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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파에서 타토파니로
안나푸르나에서 보내는 편지 전체 본문을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타토파니까지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어제 저녁에 비가 많이 내렸고, 여기서부터 타토파니까지 이어진 트레일이 최근 유지보수가 잘 안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영국인 커플은 이 구간을 따라 걷다가 길이 무너져 있었던 탓에 온 길을 되돌아와야 했었다고.
버스를 타고 오늘 40km 정도를 이동한다면 예정보다 하루 정도는 일정을 절약하게 되는 거다. 앞으로의 트레킹 일정 - 푼힐Poon Hill,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nnapurna B.C., 마르디히말Mardi Himal - 을 생각하면 지금 시간과 체력을 조금 아껴도 좋겠다 싶었다.
7시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닉이 배낭을 메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닉도 어제 트레일 상태가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었다. 오늘 느긋하게 출발하려고 마음먹고 있다가 이 다음 버스가 11시라는 얘기를 듣고는 서둘러 숙소에서 나왔다고. 우리는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나란히 탑승할 수 있었다.

버스 뒷자리에 앉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보고 있으니 조금 낯선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버스에게 의지하며 수월하게 목적지까지 가나 했더니 역시나, 도중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다. 어제 많이 내린 비 때문에 차 도로 일부가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도로에 멈춰 선 차량은 하나둘 늘어가는데, 긴급 복구를 진행하는 굴삭기의 작업 속도는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더디기만 했다.
결국 닉과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복구작업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린 결국 거기서부터 다시 걷기로 했다. 버스 지붕에 올려져 있던 배낭을 내리고 다시 어깨에 메었다. 그리고 굴삭기의 작업이 잠깐 멈춘 틈을 타 도로 유실 구간을 넘어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헛웃음이 났다. 우린 어쩔 수 없는 도보여행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레저로 산을 걷고
누군가는 노동으로 산을 걷는다
타토파니에 도착한 우리는 닉이 누군가에게 추천받았다는 Old Kamala라는 숙소에 짐을 풀고, 우선 그동안 밀린 빨래를 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시작한 이후로 양말 몇 켤레를 제외하곤 빨래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산속에선 냄새가 나도 다들 그러려니 하고 지내왔었다.
빨래를 마친 후 상쾌한 기분으로 근처의 온천에 갔다. 이곳 타토파니는 온천으로 유명한 마을이라고 했다. 입장료는 150루피원화기준 1,500원 수준. 물 온도는 우리나라 목욕탕의 온탕과 비슷했다. 그동안 트레킹을 하며 쌓인 피로를 풀기 시작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리기 시작한 비에 곧 자리를 떠야 했다. 기껏 말려놓은 빨래가 다시 젖어버릴까 걱정이 되어 부랴부랴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빨래를 방안으로 치우고, 난 야외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 편지를 쓰고 있다. 닉은 아쉬웠는지 다시 온천을 즐기러 가겠다고 한다. 나도 온천이 좋기는 하지만, 지금은 만사가 귀찮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