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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
안나푸르나에서 보내는 편지 전체 본문을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어 잠이 깨었다. 더 자려 애쓰지 않고 침낭에서 빠져나와 짐을 꾸리고, 새벽 4시에 이미 마르디히말 뷰포인트를 향해 출발했다. 아직 어두컴컴한 밤이었지만 어제 고친 헤드랜턴이 잘 작동하여 다행이었다.
어제 눈이 늦게까지 내린 데다가 아직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내 앞에 사람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길을 잘 못 읽어 길을 되돌아와야 했다. 그런 와중에 어둠 속에서 만나게 된 개 한 마리가 내 길동무가 되어주어 무척 반가웠다.
한참을 걸어 올라갔을 때 뒤에서 빠르게 올라오는 한 남자를 만났다. 어제도 만난 적이 있었던 찻집 주인, 빔Bhim이었다. 그도 오늘 새벽에 차를 팔기 위해 뷰포인트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덕분에 그를 따라 한결 수월하게 길을 오를 수 있었다
.
뷰포인트에 도착한 그가 어두컴컴한 찻집의 바닥에 앉아 나무 장작에 불을 붙였다. 난 자연스럽게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손을 녹였다. 그리고 그의 첫 손님이 된 자격으로 마살라 티를 한잔 받아 마셨다.
산등성이 너머로 아름답게 퍼져가는 노을과 마살라 티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뒤이어 올라온 트레커들 중 니콜라스가 있었다. 얼마전 ABC에서 만났던친구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ABC나 MBC가 보이는 지점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충동적으로 더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까지 가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최근 눈이 많이 내려 트레일이 막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뷰포인트를 지나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 너무 즐거워 멈출 수가 없었다. 능선 위에 서니 주변의 풍경이 막힘없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햇살이 산등성이를 넘어 내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을 땐 나도 모르게 야호 함성을 지르고 말았다.
멀리서 니콜라스와 쓰리라자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렸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응답하고, 더 앞으로 나아갔다.
점차 뷰포인트는 멀어지고,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점점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된 듯한 기분을 즐겼다.
동시에 먼저 지나간 트레커들의 흔적은 점차 사라져 가고, 종아리에 이르는 깊은 눈길이 시작되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전진하다가 문득 ‘위험한 짓 하려거든 가족의 얼굴을 먼저 생각하라’고 했던 우리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베이스캠프를 눈앞에 두고 뒤돌아가려 했지만, 바로 뒤를 따라오던 한 독일인과 그의 가이드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한팀이 되어 마지막 힘든 구간을 함께 뚫기로 했다. 동료가 생기니 한결 안심이 되었다.
그 독일인 트레커의 가이드와 내가 번갈아 가며 앞장서서 눈길을 뚫고, 마침내 우리가 베이스지점에 도착했을 때 우리 셋은 마치 대단한 성취라도 한 마냥 세레머니를 했다.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올바른지만 확인하면 돼
우리는 가장 좋은 것을 택하려 하다 결국 남들과 같아져 버리는 것 같아.
실수하지 않으려 남들의 이야기를 듣고, 남들이 해봤던 일들을 우리도 따라 하지.
우린 최선의 것을 원했지만, 최선의 것은 아직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을 수도 있어.


난 다시 먼 길을 걸어 산속 마을 시딩Siding에 도착했다. 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 4500m 고도에서 시작해 시딩 1750m 고도까지 내려오는 먼 하산길이었다.
이것으로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은 마무리되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여행을 원하지만 내 몸은 이제 휴식을 원하는 것 같다.
이곳에서 포카라로 향하는 지프를 알아보니 내일 아침 8시에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지프가 있다고 한다. 1,000루피를 내면 포카라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 난 시딩에서 그나마 최신식으로 지어졌다는 한 숙소에 짐을 풀고, 오래간만에 와이파이에 연결하여 아내에게 내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금까지의 무사 여정을 자축하는 의미로 오늘 저녁은 푸짐하게 시켜 먹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건만, 역시 이곳에서 음식을 푸짐하게 시키기엔 내 예산이 너무 빠듯한 것 같다. 오늘 하루만 더 참고 내일 포카라에 가면 맛있게 먹기로 하자.









돌아온 도시의 풍경은 갑작스럽고 당혹스러웠지만
난 빨리도 이곳에 다시 적응했지
저렴한 생수의 가격에 놀라고
다양한 음식의 선택권에 즐거워하고
돌아갈 준비를 하느라 이것저것 쇼핑에 열중하기도 했지
그러다 산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여기서 만나 얘기를 나눠보면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
벌써 산이 그립고
한편으론 이런 문명의 혜택에 감사하게 돼
편안한 잠자리와 따뜻한 샤워가 가능한 이곳
난 이곳 포카라를 큰 도시라고 부른다친구들은 이 말을 듣고 기가 친 듯 웃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