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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여행하기
길에서 만나다 전체 본문을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30일 차
본디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 본질에 대한 것이지 현상이 아니다.
꽃이 흩뿌려진다 한들 가슴 아파하지 마라.
이미 그것은 내 안에 있으니까.
이민자 숙소의 침대 위에서 약 13시간을 자고 눈을 떴다.
충분히 자고 나니 확연해졌다. 나는 다시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일단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배낭 속의 음식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빵과 햄을 꺼내어보니 여기저기 쥐가 파먹은 흔적이 보였다.
'어제 밤중에 배낭 속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이 소리였나 보구나.'
아깝지만 비닐봉지 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바닷가를 따라 산책하는데 어제 노숙자 무리 중에서 보았던 다른 한 명의 노인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보고는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고 어제의 자전거 도난 얘 기를 했다. 내가 괜찮다고, 나는 어쨌든 이 여행을 계속해 나갈 것 이라고, 그리고 지금부터는 길을 걸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나에게 가라데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내가 한국 사람은 태권도를 배운 다고 말해주었다. 그가 “그 나쁜 사람들이 너의 다른 것을 노릴지도 몰라”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늘 주의하고 경계하라고 조언해주고는 떠났다.
나는 아까 빵을 자르려고 챙겨왔던 칼 하나를 내 바지 오른쪽 보 조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물건은 잃어버릴지라도 내 몸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숙소로 돌아와 곧바로 짐을 줄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그동안 받은 옷가지가 너무 많았는데, 이제부터 이걸 다 짊어지고 걷기란 무리였다. 우선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생각에 셔츠 두 개와 티셔츠 하나를 같은 방에 있던 우루과이 친구에게 선 물로 주었다. 그리고 자전거 예비타이어 하나와 빗물에 젖은 채 오 랜 시간이 지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티셔츠 하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렇게 짐을 새로 싸니, 여전히 충분히 가볍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배낭에 물건을 다 담을 수가 있었다.
비록 하룻밤을 함께 나눈 사이였지만 그새 정이 든 같은 방의 룸 메이트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여기서 머물면서 물류 회사의 짐 나르는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지만, 나에게는 지 금 이 여행을 계속해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행운을 빌어주었고, 나는 숙소를 나와 길을 걷기 시작 했다.
목표는 그것이 꼭 성취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위한 한 걸음을 내 딛게 하는 힘에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일단 브라질 국경을 걸어서 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그 새로운 목표는 날 새로운 여정에의 희망에 젖게 했다. 걸어서 하는 여행은 나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 줄 것이다.
나는 해안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저 이 바닷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언젠가 브라질 국경에 닿을 수 있으리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젠 굳이 이정표를 확인해야 할 필요도, 몇 번 도로인지 일일이 물 어봐야 할 필요도 없었다.
걷다가 우연히 커다란 간판을 하나 보았다.
‘Keep Walking (계속 걸어라) ’
조니워커의 광고판이었다. 나의 길을 응원하고 있는 거라고 받아 들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많은 사람이 조깅을 하던 잘 정돈된 해안 길이 한적한 분위기의 수풀 길로 바뀌었다. 점점 도시 외곽으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였다. 조용한 길을 홀로 걷고 있자니 왠지 길게 늘어선 내 그림자가 길동무처럼 느껴졌다. 조금은 외롭게 느껴지는 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때처럼 나를 응원해주는 자동차의 경적도, 손을 흔들어주는 오토바이 무리도 없었다.
한편, 걷는다는 것이 새로운 자유로움을 선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자유롭게 보행속도를 조절해가며 주위 경관을 감상했다. 힘들면 좋은 자리를 찾아 앉아 쉬었다. 벤치에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흘러, 해가 어느덧 수풀 속으로 숨어들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행히 때맞춰 한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슈퍼마켓에서 바게트 2개와 햄 200g을 샀다. 이걸로 나는 내일 아침이나 점 심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쯤 토마토 한 개정도 사 먹어 줘야 하겠다. 나는 나름대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자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