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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리오
길에서 만나다 전반부를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공원 벤치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 작했다. 몸을 일으켜보니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컴컴한 어둠 속에 비만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왠지 음산 한 분위기마저 들었다. 빗방울이 점점 거세어짐을 느낀 나는 모든 짐을 챙겨 들고 어딘가 비 피할 곳을 찾아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부족하나마 거센 비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한 건물 처마 밑을 발견하여 그곳 건물 벽에 몸을 기대었다. 비는 점점 거세어져 마치 소낙비처럼 쏟아부었고, 그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숨을 쉬며, 오늘 잠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허름한 차림의 한 사내가 나에게 접근해옴을 느꼈다. 순간, 나는 그를 경계 하며 발밑에 놓아둔 짐을 다시 챙겨 들었다. 그가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해왔으나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난 이렇게 으슥한 곳에서 이런 사내와 함께 있는 건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그를 무시하고 이곳을 뜰 준비를 했다. 그러다 불현듯 내가 얼마 전 일본인 친구 마사에게 했던 말이 떠 올랐다. "도둑을 맞아 무엇보다 억울한 건 더는 남을 믿지 못하게 된 듯한 자신을 보는 일이야." 그런 말을 해놓고선 왜 극복하려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을 믿고 신뢰하는 거다.’
난 다시 짐을 발밑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에게 추우냐고 물었다. 비가 내리고 기온이 많이 떨어져 있어 그가 꽤 추운 듯 보였기 때 문이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내 배낭을 열어 롤란도로부터 받은 스웨터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에게 입으라고 건네주었 다. 그는 처음엔 어리둥절하더니 곧 고마워하며 스웨터를 받아 입었 다. 그리고 연거푸 뭐라고 나에게 말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난 여전 히 그의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또 한 명의 사내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꽤 옷차림도 깔끔하고 젊어 보였는데 이런 밤중에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 궁금증이 들었다. 우리는 마치 동병상련의 동지처럼 건물 벽에 붙어 앉아 한참 동안 비 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고, 비가 조금 사그라들었을 무렵, 우린 보다 좋은 다
른 장소를 찾아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그들이 먼저 걸었고 난 그 뒤를 따라갔다. 우리는 도로 하나를 건 너 큰 빌딩의 입구에 커다란 천장이 있는 좋은 장소를 발견했다. 그 곳에서 우리 셋은 나란히 앉아 함께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의 대화에는 손짓과 눈치, 그리고 나의 스페인 어-영어 사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둘의 이름은 줄리오와 임마누엘. 줄리오는 부모님이 없다고 했 다. 그리고 매일 지하철 같은 곳에서 조그만 엽서를 팔아 생활을 한 다고 했다. 임마누엘은 21살의 젊은 대학생이었는데, 빗속에서 자 신의 고민거리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었다고 했다. 그건 부모님과의 문제도, 친구나 애인과의 문제도 아니라고 했다. 좀 더 복잡하고 답이 없는 고민인 듯했지만 언어의 장벽으로 내가 더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내가 생각은 생각을 더 키워나갈 뿐이라고 이야기했더니 그가 자기도 알고 있다며 웃었다. 임마누엘과 나는 마음이 잘 통하는 듯 이야기가 길어졌다. 물론 얘기가 깊어질수록 생각을 올바로 전달하기가 힘들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줄리오는 피곤하다며 먼저 자리에 누웠다. 자다가 번 번이 깨며 추워하길래 내 배낭에서 스웨이드 잠바 하나를 더 꺼내 어 그에게 입으라고 건네주었다. 어차피 난 잘 입지도 않는데다 무
겁기까지 했던 옷이라 큰 부담 없이 그에게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진심으로 나에게 고마워했다. 임마누엘과 나는 새벽 3시 무렵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 메일 주소를 교환하고는 헤어졌다. 그는 부모님이 경찰이라 그쪽 경 찰서에서 잠을 재워줄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난 왜인지 옆에서 자는 줄리오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여기서 함께 잠을 자겠다고 했다. 그는 떠나면서 이런 곳에서 노숙자들은 조심하는 게 좋다며, 내가 가진 중요한 물건은 품고 자라고 조언해주었다. 난 문제 없다며 웃었다.
16일 차
눈을 떠보니 길거리의 사람들이 힐끗힐끗 우리를 쳐다보며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의 눈엔 이방인인 내가 이런 길바닥에서 자고 있는 게 낯설게 보이기도 할 것이다. 줄리오와 어제의 그 공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내 자전거가 안전하게 매어져 있는 것을 먼저 확인한 뒤, 줄리오에게 내 가방에 든 빵을 꺼내 보이며 같이 먹자고 권했다. 하지만 그는 왜인지 나보고 자 꾸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자고 했다. 나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형편은 아니라 거절을 하고 있는데 그가 주머니에서 10페소를 꺼내 어 보이며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줄리오가 어제의 내 도움에 대해 보답을 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슴이 찡했 다. 이 10페소는 그가 힘들게 엽서를 팔아 모은 돈일 것이다. 우리는 식당으로 가 크루와상 하나와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해결 했다. 푸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넉넉해지는 아침식사였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다시 공원의 벤치에 드러누워 막 내리쬐기 시작 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잠을 더 청했다. 노숙의 밤은 춥고도 길어, 이런 아침의 햇살은 마침내 '우리' 노숙 인의 따뜻한 이불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느꼈다. 누군가 이런 우릴 지나치며 게으른 사람이라 부르겠지. 하지만 우리는 다만 조금 다른
시간을 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 시간가량 벤치에서 누워 잔 뒤, 자리에서 일어 나 "다음에 또 보자"는 기약 없는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나는 고장 난 자전거를 끌고 막 문을 열기 시작한 자전거 가게를 세 군데나 돌아다녔으나 허탕을 쳤다. 하지만 다행히 한 자동차 정 비소에서 겨우 자전거를 수리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수리한 뒤, 중 앙일보 강 사장님이 로사리오에서 꼭 가보라고 권해주셨던 변광수 아저씨네 옷 가게를 찾아갔다. 강 사장님이 미리 연락해 주신 덕에 그날 처음 뵌 할머니(변광수 아저씨의 어머니)로부터 한국 음식을 대접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손자인 얼과 결은 날 데리고 나가 체 게바 라의 생가를 비롯한 몇몇 유명한 장소를 구경시켜 주었다. 둘은 아 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의젓한 모습이었다. 저녁이 될 무렵, 오늘 자동차 정비소에서 했던 자전거 수리가 충 분치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낮은 턱을 넘을 때마다 뒷바퀴의 바람이 조금씩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타이어를 교체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 들렀던 곳들 모두 내 자전거에 맞는 타이어가 없다고 했었기 때문에 난감했다. 결에게 물어보니 다행히 집 근처에 내가 아직 들르지 않았던 자전거 가게가 한 군데 더 있 다고 하니, 내일 그곳을 찾아가 봐야겠다.
17일 차
로사리오의 변광수 아저씨 집은 많은 배낭 여행객의 안식처와 같은 곳이다. 이제껏 그 집을 들렀다 간 배낭 여행객들의 방명록을 훑 어보고 나서야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 집을 거쳐 갔는지를 알 수 있었다. 변광수 아저씨 본인 역시 오랜 기간 동안 배낭여행을 즐겼던지라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고, 그에 대해 보답을 하고자 이렇게 많은 배낭 여행객들을 집으로 초대해 도와주고 있다는 얘기를 그 집 아주머니로부터 들었다. 나는 이 집과 여기서 새로 알게 된 지수형의 집에서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도움받았다. 이렇게 편한 생활은 무척이나 좋았지만, 한편 자전거 여행에 대한 내 열망은 어서 자전거 수리를 마무리하고 다 시 가던 길을 떠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제 결이 알려준 집 근처의 자전거 가게에 들렀다. 다행히 앞서 들렀던 다른 가게에 비해 규모가 크고 부품이 잘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타이어를 새걸로 교체해달라고 요청했다. 이곳 가게 주인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어제도 수리했던 타이어에서 다시 바람이 빠지고 있었기 때문에 난 완전히 문제를 해결한 상태에서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로사리오를 떠나면 당분간 이런 규모의 자전
거 가게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총 수리비는 16페소이고, 수리는 다음 주 화요일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번 주가 부활절 기간 이라 다음 주 월요일까지 문을 닫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난 그 때문에라도 더더욱 오늘 중으로 수리를 마쳐달라고 부탁했다. 난 이 제 막 이 여행을 시작했을 뿐인데, 자전거 수리 때문에 이곳에서 며 칠을 더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결국 내 뜻을 이해하고, 자 전거는 한 시간 뒤에 찾으러 오라며 수리해주기로 승낙했다. 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그곳을 나왔다. 이제 곧 다시 자전거 여 행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한 시간 뒤, 다시 그 자전거 가게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 이었다. 아까의 그 자전거가게를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리 찾기 힘든 위치가 아니었는데, 분명히 이 근처 어디였는데, 라고 생각하며 근처를 두리번거리던 나는, 철창에 자물쇠가 두 개나 채워진 채 문이 굳게 닫혀있는 아까의 그 자전거 가게를 발견하게 되었다. 당황스러웠다. 시간은 이제 막 그들이 말한 한 시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었고, 가게 입구에 쓰여 있는 영업시간도 아직 한 시간이 넘게 남아있었다. 혹시 점심시간이라 잠시 문을 닫은 것일지도 모른다며 희망을 버 리지 않고 기다려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가게의 문은 다시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게는 이미 부활절 휴가에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한시 빨리 떠나고 싶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전거는 태연하게도 굳게 닫힌 가게 안에 편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황당하고 허탈한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일어나 발길을 돌렸다.
나는 결이네 옷 가게로 돌아와 아주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말씀드 렸다. 피치 못하게 며칠간 더 신세를 져야 할 듯하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웃으셨다. 그리고 자전거 가게의 얘기에 대해서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는 듯, “그 한 시간이란 말을 순진하게 믿으시다니요. 이곳 사람들은 그저 '다음에 찾으러 오라'는 것을 '한 시간'이라고 쉽게 말할 뿐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뒤이어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알려진대로 이번 주는 계속되는 부활주일. 다음 주 월요일도 공휴 일. 계획보다 한참을 더 이곳 로사리오에서 머무르게 된 상황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이 로사리오는 아직 나에게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서투른 열정을 잠시 진정시 키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나를 이곳에서 쉽게 뜨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상황을 마주하며, 나는 이곳 로사리오의 의미에 대해 다시 멋 대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려 애쓰며, 책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결이네 집 책장에 꽂힌 여러 권의 책 중에 베 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라는 책의 제목에 이끌렸다. "어떤 종류의 위업이나 쾌거, 특히 그것들을 억지로 갖다 붙이는 일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편집자의 말. "어떤 대단 한 성공으로 여겨질 여행을 염두에 둔 것이 결코 아니다."라는 글쓴 이의 말.
사람은 때때로 자신이 마주하는 연이은 상황들이 단순한 우연이라 생각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난 그저 일정에 대한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다만 이 모든 일들의 의미를 믿으며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길을 걷자. 여행은 아마도 자신을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환경 속으로 스스로 집어넣는 일이고, 중요한 만남 혹은 기회는 항상 그 너머에 있을 것이다.
19일 차
마침 부활절이기도 하여 이곳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성경을 통해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의 원뜻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마누엘은 내가 얼마 전 로사리오에서 첫날 밤 노 숙을 할 때 만났던 한 친구의 이름이기도 했다. 그와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인디펜던시아 공원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Lee!”하고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곳엔 환하게 웃고 있는 임마누엘과 그의 여자친구가 있었다. 정말 놀라운 우연이었다. 나도 반갑게 인사하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임마누엘은 고민이 많아 보이던 그날 밤과 달리 오늘은 밝은 표정이었다. 우린 다시 지 난번처럼 영-스페인어 사전을 들추어가며 단어와 단어로 이어지는 대화를 하고, 킬킬대며 웃었다. 언어의 장벽은 여전했지만, 우린 이 미 가까운 친구가 된 듯했다. 우리의 대화가 길어지자 그의 옆에 앉아있던 여자친구가 눈치를 주는 것이 느껴졌다. 난 오늘 이 만남을 감사해하며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나중에 다시 보자고 인사하며 헤어졌지만, 우리 둘 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21일 차
화요일. 마침내 다시 찾은 자전거 가게. 오늘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수리를 맡겨놓은 자전거를 먼저 확인했다. 부탁했던 타이어 교체는 이미 완료되어 있었다. 나는 가게 주인에게 지난주에 한 시간 뒤에 오라고 해 놓고선 왜 일찍 가게 문을 닫았느냐고 항의했다.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무어라 변명을 하였는데,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아무튼이 착한 주인아저씨는 나에게 재차 사과를 하며, 자전거 수리비를 일절 받지 않겠다고, 그냥 가져가면 된다고 하였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그의 반응에 얼떨떨하기도 하고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금전적으로 아쉬운 형편인 나는 못 이긴 척 받아들였다. 그리고이 자전거 가게 아저씨도 내 여행을 응원해주는 것이라고 멋대로 받아들였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라시아스(고마워요)!”를 더 크게 외치고는 자전 거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결이네 할머니께 이제 떠나야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언제 준비 하셨는지 나에게 새 양말을 몇 켤레 건네셨고, 뒤이어 50페소를 내 손에 쥐여주셨다. 난 정말 지금까지 받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말씀드렸지만 할머니께서는 자꾸 뭔가를 더 챙겨주려고 하셨다. 할머니께 감사를 표하고, 옷 가게로 가 아주머니에게도 이제 떠나겠 다고 얘기했다. 아주머니는 내 자전거 상태가 별로라는 둥 그런 얘기를 하다가, 결국 내 짐 묶는 끈이 헐거워 보인다며 날 데리고 철물점으로 가 새 끈을 하나 사주었다. 그걸로도 모자라는지 나에게 경비에 보태라며 100페소를 건넸고, 가는 길에 생수도 한 통 사라며 10페소를 더 쥐어주었다. 너무 많은 보살핌에 나는 되려 면목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한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고, 모두에게 인사를 마쳤다. 단지 결과 얼에게 마지막 인사를 못한 게 너무 아쉬웠지만, 난 이들에 대해 감사함을 잊지 않기로 하며 다시 자전거에 올라 길을 떠났다.
오랜만에 자전거에 올라 길 위를 달리고 있으니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실감이 나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로사리오 중심을 벗어나 즐 거운 기분으로 강변을 따라 달리다 보니 금세 로사리오-빅토리아 다리(우루과이를 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 부근에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문제에 봉착했다. 다리 입구 표지판에 '자동 차 이외 출입금지'라고 쓰여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서는 달리 어느 길로 우루과이를 향해 갈 수 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무시하고 전진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진입한 다리는 좁은 2차선 도로였고, 빠르게 주행하는 차 들이 아슬아슬하게 내 옷깃을 스치며 지나가는 장면이 여러 차례 연출 되었다. 난 위협을 느꼈지만 이미 되돌아갈 방도가 없었고, 최 대한 갓길에 붙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약 5분 정도를 달 렸을까, 아직 실질적으로 강을 건너는 다리 구간에도 진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결국 한 경찰에게 제지를 당하게 되었다. 그녀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고 다리를 건너게 해달라고 청해봤지만 단번에 거절당했다. 그녀가 다른 몇몇 경찰들을 더 불러왔고 그 들은 단호하게 이 길은 자전거로 건널 수 없다고 했다. 하긴, 좀 전의 내 경험이 이미 이 다리는 자전거로 건너기에 너무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전거로 다리 건너기를 포기한 나는 대신 그들에게 강 건너로 넘 어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다른 길은 없다며, 이 길을 건너는 버스를 타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비용이 15페소라는 말을 듣자마자 난 아직 그 돈을 쓸 준비가 안 된 사람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신 나는 히치하이크를 하기로 결심했 다. 경찰의 도움으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도로 갓길에 서서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난 지난 번 로사리오로 오는 길에 쉽사리 히치하
이크에 성공했던 기억이 있었던지라 오늘도 그리 힘들지 않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웬걸, 여러 시간 동안 큰 트럭이 보일 때 마다 손을 흔들었지만 나를 위해 서주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래 서 나는 장소를 이동하며 다시 손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근처 슈퍼 마켓과 주유소를 찾아다니며 일일이 서 있는 차량에게 빅토리아 방 면으로 가지 않는지를 물어보기도 했다. 그 많은 차량 중 단 두 대 만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고 말해주었는데, 대신 그 차의 운 전사들은 나에게 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계속된 히치하이크의 실패로 내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다. 오 후 1시경부터 시작했던 일이 어느새 저녁 6시를 넘기고 있었다. 난 오늘 오전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신이 나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히치하이크를 하느라 온 하루를 쓰고 있는 내 모습에 약간의 허탈 감이 들었다. 차라리 애초에 버스를 탈걸, 아니면 아까 주유소에서 만난 그 차량들과 적당히 가격을 흥정해서 타고 갈걸 그랬나 하는 상념들이 이어졌다. 해는 어느새 지평선을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더이상 아 까처럼 도로를 달려오는 차량이 자전거를 실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해보지도 않았고, 그저 도롯가에 서서 머리 위로 올린 손을 끝 없이 흔들기를 반복했다. 처음 히치하이크를 시도할 때의 그 쑥스러운 감정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멍하니 손을 흔들다 해가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을 바라보았다. 이러나저러나 오늘도 석양은 아름 다웠다. 곧 해는 완전히 떨어졌고, 깜깜한 어둠이 찾아왔다. 계속 손을 흔 들던 나는 이제 더는 소용없는 짓이라고, 근처에 노숙 장소를 알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시계를 다시 쳐다 보고는 8시까지, 딱 20분만 더 해보기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조금 더 손을 흔들며 갓길에 서 있었을 때, 마침내 한 차 량이 내 앞에 섰다. 작은 승용차였다. 하지만 난 이 차가 내 자전거를 실을 수 있을지, 빅토리아로 가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내 앞에 서 줬다는 그 자체가 무척이나 감격스러웠다. 차 문이 열리고 한 청년이 밝은 표정으로 나오더니 “올라!”하고 인사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지금 자전거로 여행하는 중이냐고, 자기도 예전에 멕시코까지 자전거여행을 했다고 얘기하며 날 반가워했 다. 내가 지금 빅토리아로 넘어가는 차량을 붙잡으려고 몇 시간째 이러고 있다고 얘기하자, 그는 안타까워하며 집이 이 근처라 자신도 그리로 가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오늘은 어차피 밤도 늦었으니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다시 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노숙보다 훨씬 나은 선택지였다. 그는 잠시 그의 집에 전화해 부모님께 허락을 받는 듯했다. 그리
고 그의 차가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앞장서고 난 그 뒤를 자전거로 따라갔다. 그렇게 약 2km 정도를 달린 후, 그의 집에 닿을 수 있었 다.
그의 이름은 오라시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중남미를 여행할 때 소방서에서 잠을 많이 잤는데, 지금은 자신이 소방관이 되어있다고 했다. 나보고도 잘 곳이 없으면 소방서를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언젠가 한 번 시도해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의 집에는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형의 아내와 5개월 된 그녀의 아기가 있었다. 모두가 참 좋은 사람이었고 나를 웃으며 맞아주었다.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해왔었는데 또다시 내 부족한 스페인어 탓에 충분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내가 오기 이전에도 오라시오가 여행 온 일본인, 호주인, 유럽인 등 많은 사람을 데 려왔다고 하는데 그들 대부분이 스페인어에 능했었다고 하니 내가 괜히 미안해졌다. 꽤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모두 함께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난 오 늘 결이네 할머니께 받은 컵라면을 저녁식사로 끓여 먹으려 했는데, 오라시오의 어머니가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 나는 그 컵라면을 대신 오라시오에게 선물로 주었다. 오라시오는 여행 중인 나에게 더 필요할 거라며 몇 번이고 거절했지만, 이 컵라면 외엔 그에 대한 고 마운 마음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식사는 파스타와 야채 무침, 닭조림이었는데 너무 맛있는 음식들 이었다. 오늘 온종일 히치하이크를 하며 고단했던 몸과 마음이 그들과 식사를 하며, 와인을 마시며 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