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14일 차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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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여정의 시작

길에서 만나다 전반부를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오늘 새로운 여정에 앞서 ‘SOL’ 골동품가게에 들렀다. 리카르도 김 사장님에게 작별 인사도 해야 했고, 중앙일보 남미지사의 강 사 장님이라는 분이 내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가게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고, 그분은 내 이야 기를 종이에 받아 적었다. 그리고 태극기를 단 자전거와 함께 내 사 진을 찍었다. 강 사장님은 날 두고 너무 무모하다고 했다. 2,500km가 넘는 상 파울루까지의 거리를 지금 내가 가진 경비로, 게다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겠다는 내 여행계획을 듣고 한 이야기였다. 가다가 돈이 다 떨어진 뒤에는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잠은 길바닥에서 자면 되고, 밥은 사람들 일을 좀 도울 수 있다면 얻어먹을 방법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강 사장님은 혀를 끌끌 찼다. 인터뷰를 마친 뒤, 함께 가게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가 식사를 했 다. 한동안 이런 음식을 구경하기가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내 앞의 음식들을 어느 때보다 더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다 마쳤을

때, 강 사장님은 200페소라는 큰 돈을 경비에 보태 쓰라며 건네었 다. 아무래도 준비가 부족한 듯한 지금 내 모습에 걱정이 되는 모양 이었다. 나는 감사히 그 돈을 받았다. 뒤이어 리카르도 김 사장님도 나에게 100페소를 주었다. 난 이것을 일주일간의 내 노동에 대한 보수로 생각하기로 하며 감사히 받아들였다. 이걸로 내 수중의 여행자금이 크게 늘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100페소의 예산으로 떠날 작정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도 총 400 페소의 여행자금이 준비된 것이다.

나는 강 사장님에게 여행이 가져다주는 우연의 힘을 믿는다고 이 야기했다. 필요는 예상치 못한 형태로 어떻게든 채워지게 될 것이라고. 난 그냥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세상은 자신의 길을 놓치지 않는 자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법이라고, 내가 어디선가 들었던 그 말을 이야기했다. 나의 그 막연하고도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지켜보며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분들은 알까. 이분들이 이미 나에게 또 하나의 행운이었음을. 난 나의 어린아이 같은 믿음이 이미 보답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나의 이 여정은 아마도 지켜보는 이에게 굉장히 불확실하고, 그래 서 위험천만하고, 게다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계획되지 않은 여정은, 나에게 더 많은 걸 보여줄지도 모른다. 우리는 평소 일상에서 자신을 책임지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야 하니, 이 여행에서만큼은 벗어나 마음의 긴장을 풀자. 그 속에는 우 리가 알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이고, 그것은 무엇보다 여행이 주는 소중한 매력이다.

마침내 자전거에 올라 나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몸은 고달 프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졌지만 내 마음은 오히려 더 편안했다.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보았다.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을 통해 나의 속도를 느껴보았다. 상쾌했다. '내가 남미에 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을 줄이야.' 이건 분명 내가 한국에서 여 행을 떠나오기 전엔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꼬불꼬불한 교차로와 도심을 빠져나온 뒤 쭉 이어진 길 위를 따라 한참을 정신없이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는 ‘GUMBO’라고 하는 한 대형마트에 다다랐다. 해가 뉘엿뉘엿 지평선을 넘어가고 있었고, 난 숙식을 해결하기 위 해 이곳에 자전거를 세웠다. 간단하게 빵을 사서 저녁을 해결하고, 벤치에 앉아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는데 난 지금 내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오늘 난 몇 킬로나 달려온 것일까. 확 실한 건 한 가지가 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많다는 것. 내가 힘든 길을 택한 건 단순히 더 강해지거나 극복하여 성취감을 맛보기 위함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웃고 즐길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가끔 몸이 괴롭고, 배가 고프고, 외로워져도 이 시간을 즐겁게 받아들이자. 그렇게 된 다면 분명 난 더 성장해 있는 것이다.

15일 차

어젯밤은 결국 경찰서 주차장에서 잠자리를 해결해야 했다. 대형마트 앞 벤치에서 잠을 자다가 곧 문을 닫아야 하니 나가라는 경비원의 말을 들었고, 그럼에도 몰래 야외주차장 쪽으로 이동하여 또다시 잠을 청하려 하다 다시 한번 경비원에게 걸려 결국 경찰까지 부르게 된 것이었다. 나는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과 악수하고 지금 내 형 편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 신원 확인을 위하여 아르헨티나의 지인 연락처를 계속해서 캐물었고, 난 연락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버텼다. 모두가 자고 있을 이 늦은 밤중에 전화번호를 알아 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분간의 실랑이 끝에 그들이 포기 선언을 했다. 경찰은 나에게 경찰서의 주차장에서라도 잠을 자겠냐고 제의했고, 난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경찰차를 타고 따라가게 된 것이다. 그곳 경찰서 주차장은 치안은 완벽했지만 잠자리로써는 분명 편 한 곳이 아니었다. 도로 바로 옆의 야외주차장이라 밤새 지나가는 차들의 소음에 시달려야 했고, 모기는 또 어찌나 많은지 밤새 모기에게 물린 내 손이 퉁퉁 부을 정도였다. 잠을 자다 가끔 눈을 떠보 면 집 없는 개 한 마리가 내 얼굴 바로 앞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거나, 야간근무를 하는 경찰 몇 명이 나를 보며 자기들끼리 시시덕거 리며 농담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오늘 아침 6시 반, 일찌감치 잠에서 깨어 어제 사둔 빵과 소시지로 아침을 대충 해결하고 자전거에 다시 올라탔다. 이른 아침이라 날씨가 아직 선선하여 어제 낮에 달릴 때보다 훨씬 상쾌 했다. 그렇게 자전거로 열심히 달리기를 약 삼십 분, 일이 터졌다. 내가 뒷바퀴에 너무 많이 공기를 주입했던 탓인지, 아니면 바깥 타이어가 너무 노후되어 견디지 못했던 탓인지, 타이어 내부의 튜브가 타이어를 밀고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자전거를 잠깐 세워두고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던 순 간, 그 타이어 튜브는 급기야 ‘펑’ 하고 큰소리를 내며 터지고 말았 다. '아이고,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지 겨우 이틀 만에 타이어 펑크가 날 줄이야.' 예전에 일본에서 자전거 여행을 할 때는 단 한 번도 타이어가 펑크 난 일이 없었는데, 불과 일주일 전에 새로 간 타이어가 이렇게 쉽게 펑크가 난다는 게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자전거를 끌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찾은 세 군데의 자전거 가게는 번번이 문을 닫은 상태였고, 나 스스로 한 번, 그리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어 두 번을 더 타이어 튜브 수리를 해보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타이어가 다시 푹하고 꺼져버려서 꽤 긴 시간 동안 자전거를 끌고 걸어야 했다. 아마 구멍이 너무 커 타이어 자체를 교체해야 할 듯했다. 그렇게 약 5시간가량을 자전거를 끌고 걷다가 결국 나는 포기를 선언하고, 히치하이크를 하기로 했다. 다음 마을에 도착하려면 아직 10~20km를 더 가야 했는데, 오늘 중으로 도착을 할 수나 있을지, 그리고 그 마을에 간다고 한들 자전거 가게가 확실히 영업한다는 보장도, 교체 가능한 타이어가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었 다. 자전거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던 중, 나는 9번 고속도로 가에 세 워져 있는 트럭 한 대를 발견했다. 가까이 가보니 운전석과 조수석에 현지인 두 명이 앉아 샌드위치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난 “올라 (안녕)

!”하고 인사하고는 차를 얻어 타기 위해 준비한 스페인어로 내

상황을 설명했다. 한참을 대화했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나는 내가 준비한 말만 반복해야 했다. 다행히도 마침내 그들이 내가 차에 타는 것을 허락한 듯 손짓했고, 나는 얼른 웃으며 트럭에 올라탔다.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

몇 개 도시를 돌며 슈퍼마켓에 물건을 배달 중이었던 그들의 이름은 오마르와 라울.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먹고 있던 샌드위치의 반을 떼어주고 콜라까지 마시라고 권해주었다. 그 샌드 위치와 콜라는 정말 꿀맛이었다. 차 안에서 몇 번이고 담배를 권해 주기도 하고, 다 같이 마테를 마시기도 했다. 오마르의 아버지가 운 영하는 바에 들렀을 때는 맥주 한 병을 사주기도 했다. 나도 이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어 슈퍼마켓에서 짐을 내릴 때 박스 내리는 일을 열심히 도왔다. 아무튼, 예상보다 무척이나 빠르게 나는 로사리오(Rosario)에 도착하게 되었다. 로사리오 시내에서 오마르가 나를 내려주고는 짐칸의 박 스 하나를 뜯어 과자 세 봉지를 선물로 안겨주었다. 나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그 자리에서 벗어, 등 쪽에 그 둘의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부터 나에게 도움을 준 좋은 사람들의 이름을 이렇게나마 남기는 중이었다. 그 둘의 이름이 추가된 티셔츠를 다시 입고, 난 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로사리오의 분수대가 있는 인디펜던 시아 공원. 소문대로 이곳에는 미인이 많은 듯하고, 다들 운동을 좋 아하는지 조깅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오늘 밤은 이곳 벤치에 누워 잘까 한다. 이 공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듣기 좋고, 주 위도 너무 요란스럽지 않다.

문득 내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와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냐고, 로사리오에 가는 목적이 뭐 냐고 많은 사람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럼 난 농담처럼 미인이 많은 곳이라길래, 체 게바라가 태어난 곳이라길래, 혹은 두 번이나 가 려다 못 간 곳이라 오기가 생겨서, 라고 대답했다. 사실 난 이곳 로사리오에 대해 어떤 기대감을 품고 있었던 것 같 다. 너무나 막연하지만 로사리오에는 나를 위한 무언가가 준비되어 있을 거라고, 말이다. 주위의 많은 이가 쉽게 로사리오를 이야기하고 이곳으로 여행을 다녀갔지만, 이상하게도 난 이곳에 쉽게 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 로사리오가 나를 위한 특별한 공간 이라 몇 번의 고난이 있었던 것이라고, 언제부터인가 멋대로 믿기 시작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며칠의 시간을 이곳 로사리오에서 보내다 떠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내 멋대로의 믿음으로 억지스레 그럴듯한 이야 깃거리를 찾지는 말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야 할 일이라 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난 내 눈앞의 길을 걷는 데만 신경을 쓰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