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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서기
길에서 만나다 전반부를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잃을 게 없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 절대적인 풍요나 절대적인 빈곤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이 순간 어떤 과정에 있는가 하는 것.
내 물건의 대부분이 들어있던 배낭을 잃어버린 이후, 나는 지금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생활해 나가고 있다. 한국대사관 근처에서 지하철을 타다 만난 미국인 여성 레베카는 나에게 선뜻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주며 무슨 일이든 도와주려 했고, 호스텔의 주인 다니엘은 작은 업무(간단한 요리, 설거지, 테이블 청 소, 도어 오픈)의 대가로 잠자리와 빵을 제공해주고 있다. 호스텔 직원인 마리아나와 로자는 70페소의 돈과 여러 가지 생필품을 주었고, 또한 마리아나는(감사한 마음으로 거절하긴 했지만) 나에게 본 인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서 당분간 함께 지내자고 제안해주기도 했다. 같은 호스텔에 투숙 중이던 스코틀랜드인 나지아와 독일인 인
자, 프랑스인 샬럿 등은 날 걱정하며 많은 시간을 내 옆에 있어 주려고 했다. 노르웨이에서 온 에븐은 그 누구보다 나를 깊이 이해해 주었고, 힘이 되는 이야기와 함께 몇 번이고 거절했건만 끝내 내 손에 100페소라는 돈을 쥐여주었다. 엊그제 만난 일본인 마사는 나에게 이렇게 일기를 쓸 수 있도록 일기장과 펜을 선물해주었다. 멕시 코 출신 제라르도는 때때로 음식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나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나를 공사 현장에 데려가 주기로 약속해주기도 했다. 나와 같은 대학교에서 공부한 친구 예원이는 온두라스에 회사 일로 파견을 나와 있었는데, 내 소식을 듣고는 아르헨티나에 방문 예정인 회사 동료를 통해 날 도와주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는데, 이 페이지에 다 열 거하기 힘들 정도다. 어쨌든, 나는 현재 그들의 관심 속에서 다시 일어서고 있다.
한편 다니엘의 호스텔에서 며칠간 일을 하던 나는, 이렇게 단순히 생활을 연명해 갈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다시 세상으로 나가 내 여 행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오늘 나는 산텔모 거리(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장 번화한 관광 거리)로 나섰 다. 자전거가게를 둘러보며 가장 싼 자전거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나는 다른 일을 찾아서 돈을 조금이라도 모을 수 있다면, 그 돈으로 중고자전거를 사서 다시 여행에 나서야겠다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 다. 그리고 그 여행은 내가 다시 상파울루로 돌아가는 시점에서 완 료될 것이었다. 약 두 달 뒤, 상파울루에서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 좌석은 이미 예매해 둔 상태였고, 분실한 비행기표는 e-티켓이었기 때문에 필요한 시점에 이메일을 다시 인쇄하면 되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 다니엘에게 나의 새로운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자 고맙 게도 그는 내 계획을 전적으로 지지해주었다. 지금 그는 단지 나를 돕고 있을 뿐이라며, 내가 다른 길을 찾아가고 싶다면 가게 일에 얽 매이지 말고 밖으로 나가 찾아보라고 나를 격려해주었다. 덕분에 오 늘 나는 호스텔에서 일할 필요 없이 자유로이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이보다 앞서, 여행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돈을 벌 수 있는' 새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레베카가 알려준 아르 헨티나의 일자리 사이트에 한국어와 일본어 교실을 연다는 글을 올 려놓은 상태였다. 아직까지 아무도 반응을 해주고 있지 않았지만 말 이다.
산텔모 거리의 자전거가게 몇 군데를 돌아다니던 나는 하필 오늘은 일요일이고,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 았다. 오늘은 자전거를 알아보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릴없이 산 텔모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매주 일요일이면 이 거리는 길거리 음 악가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 상인들, 그리고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난 주말과 변함이 없는 이곳 풍경과 일 주일 사이 너무나 변해버린 현재의 내 처지가 자연스레 대비되었다. 한 시간쯤 거리에서 시간을 보냈을 무렵,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이 속에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이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하나의 이벤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은 날 도와주려 할까? 이건 잘못된 생각인 걸까?’ 나의 자존심이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단지 용기와 확신이 조금 더 필요했을 뿐이다. 내가 그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을 때 때마침 눈앞에 성당이 보였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기도를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나에게 마지막 한 발짝을 더 내디딜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저에게 가르침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성당을 나설 때 내 마음이 왠지 편안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큰 글자를 쓸 수 있는 종이판을 찾기 시작했다. 많은 인파를 헤치며 무작정 길을 걷다 한 슈퍼마켓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가 직원인 듯한 젊은 청년에게 안 쓰는 종이 상자를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친절한 이 청년은 아직 내용물이 들 어 있는 상자를 하나 꺼내더니 안에 든 것들을 비우고는 나에게 그 것을 건네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며 혹시 매직펜도 빌릴 수 있 는지를 물었다. 감사하게도 그는 다른 가게에서 매직펜을 대신 빌려 다 주었다. 그 청년에게 고마움을 다시 한번 표하고, 밖으로 나와 가게 앞에 종이박스를 넓게 펴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박스 위에 매직펜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이게 대략 내가 종이박스 한 면에 큼지막하게 적었던 전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몇몇 가게 직원들이 날 내려다보며 안 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매직펜을 돌려주고 돈을 받아 넣기 위한 조그만 종이박스를 하나 더 얻은 뒤, 인파가 많이 몰려있는 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 보이는 빈자리에 자리 잡고, 종이박스를 넓게 펴서 글자가 잘 보이도록 세워두었다. 함께 가져온 조그만 박스는 그 앞에 내려놓았 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 주저 앉았다. 나는 당당함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고 개는 항상 떳떳이 들고 있으려 했다. 주위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웃음을 지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나타났다. 가장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어주었던 사람은 여행 중으로 보이는 한 미국인 여성이었는데, 나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는 자기가 가진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받으라며 자신의 브래지어 속에서 8페소를 꺼내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뒤이어 또 한 명의 남자가 다가와 2페 소를,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한 명의 남성이 자신의 양말에서 10페소를 꺼내어 내 손에 쥐여주었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나를 거리낌 없이 도와주고 있었다. 아마 그 들도 소중히 여겨 옷 속 깊숙이 숨겨두었을 그 돈을, 나는 소중히 받아 상자에 담았다. 사람들이 점점 나에게 모여들었다. 그들은 종이상자에 쓰인 글을 읽으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난 그들에게 내게 벌어진 사건의 전 말을 보다 상세하게 묘사해 주었다. 길거리에서 많은 낯선 사람들 앞에 앉아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분명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내가 이 상황에 한창 적응해 가던 무렵, 한 동양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Are you Korean(한국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나에게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한국어로 다시 물었다. 나는 내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했고, 그는 잠시 생각 하더니 나에게 이 자리를 정리하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사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순간이 이미 내 새로운 여행의 한 챕터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금전적으로 더 많은 도움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이제 막 많은 이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런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친밀한 대화가 즐겁게 느껴지던 차였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쳤다. '이것도 나에게 준비된 길일 것이다. 이 새로운 여행의 이어진 길 이다.'
이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그를 따라가기로 했다. 종이박스를 주섬 주섬 챙겨 들고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그를 따라 자리를 떴다.
나는 곧 그의 골동품가게에 닿을 수 있었다. 많은 골동품이 그 조그만 가게 안에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고, 그 곳에는 그의 아내와 친구가 있었다. 모두 연세가 나의 부모님 정도 인 듯했다. 잠시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가게 안의 모든 사람이 나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곧이어 성함이 ‘백문수’라는 그 가게 사장님의 친구분이 나에게 우선 뭐라도 좀 먹으러 가자며 날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한 조그만 식당에 들어가 밀라네사(이탈리아식 튀김 요리로 아르헨티나에 서 즐겨 먹는 우리의 돈가스와 비슷한 음식)
하나와 맥주를 주문했다. 그동안 적게 먹
어왔던 탓인지 오히려 금방 배가 불러와 많이 먹지 못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포만감 때문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만난 한국 사람들과의 대화 때문인지,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는 듯했다. 다시 돌아간 골동품 가게에서 나는 '이병희'라고 하는 또 한 명의 한국 분을 만날 수 있었고, 우리 셋은 다시 조금 전의 음식점으로 돌아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게 안에서 그분들은 나에게 각자 100페소씩의 돈을 쥐여주었다. 며칠 전의 나라면 일단 거절했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단지 감사하다는 말을 좀 더 힘주어 했을 뿐이다. 에븐이 말한 대로, 난 좀 더 순순히 사람들의 호의를 받아들일 필 요가 있었다. 그리고 훗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보답해야 함을 잊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골동품가게로 돌아가 나는 이만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혹시 이 근방에 일할만한 곳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그분들은 나를 골동품가게나 옷 가게에서 짧은 기간이나마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는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고, 일단 내일은 여 권을 만들고 멕시코인 친구와 공사 현장 일을 알아보러 가기로 했기 때문에 혹시 그 일이 잘 안되면 모레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그 가게 주인이자 처음 산텔모 거리에서 날 발견했던 ‘리카르도 김’이라는 분이 어차피 내일은 이 골동품 가게 휴무일이라며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우선 여권 수속비로 쓰라며 50페소를 쥐여주었다. 모두가 나를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스스로 해결해나가 고자 하는 내 생각을 존중해주었다. 악수하고 그들과 헤어지며 얼마 전 에븐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Universe will help you(온 우주가 너를 도울 거야).’ 내가 자아의 실현을 잊지 않으면 세상이 널 도우리라던 ‘연금술사’ 의 한 대목과 같은 말이다.
언젠가 ‘행복한 바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바보가 길을 걷다 눈이 필요한 자에게 자신의 눈을 주고, 귀가 필요한 자에게 자신의 귀를 주고, 코가 필요한 자에게 자신의 코를 주고, 또 다른 이에게 자신의 팔과 다리를 주고, 그렇게 모든 것을 주고 난 뒤 마지막 남은 그의 입은 웃고 있었다"고 하는 그런 이 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가 많은 이를 기쁘게 해주었지만 왜 '바보'라고 이름 붙여 졌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바보에게서 눈을, 귀를, 코를, 그리고 팔과 다리를 받은 자들은 마지막에 결국 행복했을까. 그들은 혹시라도 지금도 여전히, 더 완전한 만족을 위해 뭔가를 원하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배낭을 도둑맞은 이 사건은 어쩌면, 나에게 사진을 찍으며 뭔가를 남기려 애쓰는 일에 그만 집착하라고,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여행이라면 그만 멈추라고, 당시의 나에게 필요했던 어떤 메세지를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결 국 나에게 쉽지만 영원할 수 없는 만족보다, 힘들지만 평생을 가져 갈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
나는 호스텔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오늘 산텔모 거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하며, 오늘 갔던 골동품가게의 이름이 ‘SOL(스페인어로 태양이 라는 뜻)
’이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놀라움을 표하며 나에게 이건 운명과 같은 일이라고 호들 갑을 떨었다. 나를 도와주고 있는 이 다니엘의 호스텔 이름 역시 ‘SOL’이기 때문이었다.
6일 차
오늘은 대사관에 가서 3개월 기한의 단수여권을 발급받았다. 서류를 작성하고, 사진을 붙여 제출했더니 한 시간도 채 되지 않 아 새 여권을 손에 쥘 수가 있었다. 비용은 여권 사진을 찍는데 13.9페소, 여권 수속비 45페소가 들었다. 다들 큰돈이 아니라고 했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거금을 쓴 셈이었다. 대사관까지 같이 왔던 마사와 함께 레티로(아르헨티나의 지하철)를 이용해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다시 이동하여, 오늘 나의 일자리를 함께 알아 봐 주기로 한 제라르도를 만났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허가서류를 먼저 발급받았고, 나는 여권을 분실할 때 함께 잃어버리고만 아르헨티나 입국 도장을 다시 받는 방법을 물어 보았다. 제라르도가 통역을 해주어 수월하게 그쪽 대답을 들을 수가 있었다. 출국할 때 50페소를 페널티로 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는 복잡한 문제가 아닌듯하여 다행이었다.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제라르도가 내 여권을 구경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내가 여권을 건네주자 그는 다른 나라의 여권을 구경하는 것이 신기한 듯 내 여권과 자기 여권을 꼼꼼하게 비교하며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그가 내 이름을 다급하게 불렀다. 그는 여기 여권 만료일이 잘못된 게
아니냐고 했다. 3개월짜리가 아니라 2개월짜리로 잘못 만들어진 것 같다고. 내가 황급히 여권을 다시 받아 들고 확인해보았다. 그의 말이 맞 았다. 내 새 여권의 만료일은 나의 출국일을 열흘 앞둔 시점인 5월 12일로 되어있었다. 세상은 왜 이리도 나에게 꼼꼼함을 요구하는지... 새 여권을 받았을 때 곧바로 확인해보지 않았던 나를 잠시 질책했다. 결국 나는 제 라르도와 일자리를 알아보기는커녕 몇 시간 전에 방문했던 대사관을 다시 찾아야 했다. 나는 제라르도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사에게도 나중에 다시 보자고 인사하고는 홀로 대사관으로 서둘러 향했다.
대사관의 남자직원은 자신의 실수라며 나에게 여러 번 사과했다. 나는 다시 대사관으로 찾아올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오 늘 중으로 3개월짜리 단수여권을 손에 넣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권을 새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고, 여권의 기간을 1개월 연장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여권을 만든 당일에는 할 수가 없 다고 말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자신의 실수로 생긴 일이니 어떻게든 내일까지 여권 기간을 연장해서 내가 있는 곳으로 배달해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표정을 풀고 골동품가게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마침 외출 준비를 하고 있던 이탈리아인 프란 체스카와 마주쳤다. 배가 고파서 빵을 먹으려 했더니 자기에게 계란 남은 게 있다며 3개를 꺼내어 주었다. 계란에 양파까지 더불어 건 네준 그녀는 나에게 슬리퍼를 사러 나갈 건데 식사를 마친 후 같이 시내로 나가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별달리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쉬이 승낙했다. 프란체스카가 제공해 준 재료로 간단한 요리를 하다가 또 한 명의 좋은 친구를 만났다. 호스텔에 온 지 얼마 안 된듯한 한국 여성인데 이름이 주혜라고 했다. 마침 나와 나이도 같았다. 내가 식사를 할 때 앞에 앉아 잠시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내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해 왔다. 마지막에는 다 괜찮을 거라고, 다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날 격려하려 애쓰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웃음이 나왔다. 참 좋은 친구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프란체스카와 건물을 나서는데 주혜가 뭔가를 들고 뛰어오더니 나에게 건넸다. 뭐냐고 물어보며 그녀가 건네준 그 분홍색 비닐 백 안을 들여다보니 비누, 손톱깎이, 로션, 비상약 등이 들어 있었다. 아까 내가 지나가듯 비누가 필요하다고 했던 말에 신경을 써준 것이었다. 감사 인사를 하는 나에게 그녀는 또 못 볼지도 모르니까 지금 준 다는 말과 함께 돈 50페소를 함께 쥐여줬다. 단지 짧은 시간, 몇 마 디 나눴을 뿐인데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니 감사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심정이 되었다.
프랑스 출신 에밀리도 우리와 합류하여 플로리다 스트리트(부에노스아 이레스의 번화한 쇼핑거리)
를 둘러보았다. 시간은 어느덧 밤 8시를 넘기고 있
었고, 그제야 오늘 일본인 친구 마사가 떠난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라 인사를 하기 위해 서둘러 호스텔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미 마사는 떠난 듯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가 없으니 왠지 좀 허전했다. 시간이 빠듯하다는 걸 알면서 난 왜 굳이 밖에 나갔을까 하며 잠시 후회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런 게 여행자의 만남과 헤어짐이지.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피곤한 몸을 로비 의자에 누이고, 니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일인인 니나는 칠레의 한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던 중 짬을 내어 짧은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잠시 후 프란체스카가 자기 방으로 나를 불렀다. 그녀는 안 입는
티셔츠라며 마리화나 잎이 그려진 티셔츠 하나를 선물로 건네주었 다.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그것을 또 받았다. 얼마전 배낭을 잃어버 릴 때만해도 여분 옷이 하나도 없었는데, 나도 이제 티셔츠가 세 개가 되었다.
내일은 골동품가게를 찾아 일하게 해달라고 청해볼 생각이다. 난 눈 앞에 주어진 기회를 붙잡기로 했다.
7일 차
왜 이렇게도 난 많은 사랑을 받는지. 아침 9시가 넘어 일어난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호스텔에서 제공 하는 빵과 잼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니나가 다가와 남 아서 주는 거라며 버터와 샴푸를 건네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생각이 났다. ‘오늘은 니나가 칠 레로 떠나는 날이구나. 다들 떠나는구나.’ 불현듯 그녀가 나를 쳐다보며 부탁이 있다고 했다. 나는 무슨 일 인가 했더니 다름이 아니라 자기의 돈을 받아 달라는 얘기였다. 난 거절을 하며, 내가 많은 사람의 도움 속에 있다는 얘기를 그녀에게 한 게 부담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니나는 어차피 칠레로 떠나면 아르헨티나 페소는 필요 없다며, 조금만이라도 받아달라고 재차 말했다. 난 정말 더는 사람들의 도움을 거부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저 순 수하게 받고 나도 남들에게 보답을 하면 된다고 마음을 먹었는데도, 아직 겸손과 사양의 문화에 익숙한 탓인지 습관적인 거절을 몇 번 이고 하다가 결국 그녀에게서 30페소를 받았다. 면목 없음과 함께 가슴 따뜻한 고마움을 느꼈다. 니나와 함께 호스텔을 나서 길을 걸었다. 니나는 공항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나는 오늘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골동품가게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하철역 앞에 다다랐을 때, 그녀가 같이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아르헨티나식 인사를 하며 우린 헤어졌다. “챠오(잘 가)!” 뒤돌아서는 마음 한 켠이 허전했다. 아직도 나는 사람들과 헤어짐 에 익숙하지 못하다.
나는 골동품가게에서 온종일 골동품 닦는 일을 했다. 가만히 있었 다가는 리카르도 김 사장님이 아무 일도 시키지 않을 것 같아, 그냥 걸레를 받아 자발적으로 하나하나 닦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고를 많이 저질렀다. 뒤를 보지 않고 앉다가 청동으로 된 골동품 하나를 찌그러트렸고 (사장님이 다행히 복구시켰다), 손 잡이 달린 도자기 하나를 닦다가 너무 힘을 세게 주는 바람에 손잡 이를 부러뜨렸다. 일을 계속하기가 민망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골동품을 닦았다. 그리고 문득 주 위를 둘러보니 (나 혼자만의 느낌이었겠지만) 골동품가게 안이 더 반짝이고 환해진 듯 보였다. 일을 끝마치고 리카르도 김 사장님과 한인타운인 ‘백구촌’에 가서 순댓국을 먹었다. 남미에 온 이후 처음 맛보는 한국 음식이었다. 주 위의 많은 한국인들 속에서 한국 음식을 먹고 있자니 한국으로 돌 아온 듯 마음이 편안했다. 사장님에게 내 자전거 여행계획을 이야기 했다. 처음에는 만류하 시더니 나중에는 다 젊을 때나 할 수 있는 경험이라며 격려해주셨 다. 그리고 집에 안 쓰는 자전거가 하나 있으니 그걸 가져다 쓰라고 하셨다. 나는 또 한 번 그 도움을 감사히 받기로 했다.
식사 후 호스텔로 돌아가려는 나에게 리카르도 김 사장님께서 호 스텔까지 함께 가자고 하셨다. 그냥 호스텔 구경도 하고 주인과 얘 기도 좀 해 볼 겸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묵고 있던 호스텔까지 동행하신 사장님은 다니엘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동안 나는 테이블에 앉아 호주에서 온 여행객 마이클에게서 마 술을 배웠다. 그는 길거리에서 마술을 하며 전세계를 유랑하는 멋진친구였다. 내가 자전거 여행 계획을 이야기했더니 나의 여행 이야기를 꼭 책으로 쓰라고, 그리고 나중에 영문판을 자기가 읽을 수 있게 해달라며 나를 응원해 주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리카르도 김 사장님과 다니엘의 대화가 끝났고, 나는 사장님을 문까지 배웅해 드렸다. 호스텔로 돌아와 다니엘에게 들어보니, 사장님이 오늘부터의 숙박비를 모두 본인이 지불하 겠다고 하셨단다. 난 또다시 죄송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원래 계획은 다음 주에 떠나는 것이었지만, 어쩌면 더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들의 도움을 감사하게 받고 있지만 이 이상 그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실 리카르도 사장님으로부터 받기로 한 자전거와, 지금까지 많은 친구의 도움으로 모인 현금은 이미 내 '소박한 자전거여행'을 위 한 준비로 충분했다.
밤늦은 시각, 호스텔에서 우연히 마주친 주혜와 긴 시간 동안 마 테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새벽 1시쯤 방에 들어왔더니 룸메이트인 롤란도가 선물이라며 자기의 긴 팔 스 웨터와 스웨이드 잠바를 건넸다. 내가 자전거 여행을 떠날 것이란 걸 누군가에게 들었나 보다. 또다시 나는 감사를 표하고 그것들을 받았다.
이 모든 사랑을 결코 내가 잊지 않기를 바란다. 난 평소 건망증이 심하고 지난 일들을 쉽게 잊지만, 이 소중한 느 낌과 기억들만은 내 속에 각인되어 쉽게 사라져버리지 않기를 진심 으로 바란다.
돈의 노예가 되지 말라. 사랑의 노예 또한 되지 말라. 관심에 목말라 하지 말고 오로지 순수하고 정직한 열정을 좇아라. 그럼 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될 수 있다.
8일 차
오늘도 나는 골동품가게로 출근하여, 가게 안을 빗자루로 쓸고 바 닥을 왁스로 광을 내고 있었다. 마룻바닥이 한 달은 족히 넘도록 왁 스 칠을 하지 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가게 앞을 지나던 한 사람이 날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와 사장님과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갔다. 무슨 얘 기를 했던 걸까 하며 궁금해하고 있으니 사장님이 이야기 해 주었 다. 바닥에 그냥 왁스 칠을 하는 것보다 쇠 수세미로 한번 때를 벗 겨내고 표백제로 한 번 더 닦아낸 다음, 왁스로 광을 내면 더 환해 진다고 조언해주고 갔다는 것이었다.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저씨로구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가, 마침 일거리가 필요했던 상황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그의 조언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의 말대로 쇠 수세미를 들고 와 바닥의 때를 벗기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장님이 그만하면 되었다고, 내일 가게 직원인 폴로한테 시키면 된다고 날 만류했지만 난 멈 추지 않았다. 떠나기 전, 나도 이 가게 일에 조금은 더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마룻바닥은 때를 벗겨내자 한층 더 환해 보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이 고되어 땀이 뚝뚝 흘러내렸다. 난 점심시간을 제외하
고는 거의 쉬지 않고 마룻바닥을 문질렀고, 저녁 5시 무렵에서야 겨우 때 벗기는 일을 대충 마칠 수가 있었다. 사장님에게 내일은 오늘 미처 하지 못한 구석 부분의 때를 마저 벗겨내고, 광을 내겠다고 얘기했다. 내일도 내가 해야 할 일거리가 있는 것은 어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폐점까지 남은 두 시간 동안은 폴로가 없어 비워둔 리카르도 사장 님의 또 다른 골동품가게를 지키는 일을 했다. 스페인어로 질문하는 몇몇 손님들을 눈치껏 응대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폐점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운 좋게 오래된 영화 필름 하나를 판매할 수 있었다. 한편, 가게에 들렀던 손님 중 우루과이에서 온 여행객이 있었는데, 내 자전거 여행계획을 듣고는 나중에 몬테비데오에 들르면 꼭 연락 하라며 자신의 명함을 주고 갔다. 일을 마치고, 사장님과 같이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사장님은 길거 리의 한 키오스크(구멍가게)에 들러 담배 두 갑을 사더니 한 갑을 나에게 건네었다. 그리고 내일 보자고 인사하고는 떠났다. 내 손에 쥐어진 말보로 한 갑을 잠깐 쳐다보다 그의 멀어지는 뒷 모습을 지켜보았다. 난 이곳에서 일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어 느덧 이곳의 가족이 된 느낌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 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호스텔로 돌아와 방으로 가는 복도를 걷고 있는데, 처음 보는 한 남자가 반가운 표정으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도 함께 인사를 하 긴 했지만 왜 그렇게 날 반가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그가 내게 다가와 다시 말을 걸었다. 나에 대한 얘기는 프란체스카에게 들었다며,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나가고 있다는 얘 기를 인상 깊게 들었다고 했다. 사실 난 그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을 뿐인데. 그리고 세라를 만났다. 세라는 페루 출신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이었다. 그녀는 날 보자마자 "마침내 찾았 다!"고 소리치며 내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나에게 비닐봉지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안을 들여다봤더니 체 게바라가 프린트된 티셔츠 하나와 작은 분홍색 가방 하나가 들어있었다. 며칠 전 마사가 떠나면서 나에게 이걸 전해주라고 했단다. 체게바라 티셔츠를 보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마사가 다음 어디선가 자신과 만날 때에 이 티셔츠를 입고 오라고 했다고. 좋다, 그럼 우린 이걸로 다음에 다시 만날 약속을 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까 인사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시모네가 다가와 혹시 티셔츠가 더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기가 안 입는 것을 줄 수 있다고, 그리고 안 신는 신발 한 켤레도 줄 수 있다고 했다.
요즘 나는 정말이지 복이 넘치는 사람이다.
10일 차
드디어 나에게 자전거가 생겼다. 자전거는 사장님이 꽤 오랜 시간을 타지 않았던 건지 손을 봐야 할 곳이 많았다. 앞 타이어가 다 닳아 새 걸로 교체해야 했고, 페달도 한쪽이 어디론가 떨어져 나간 상태라 둘 다 새 걸로 교체했다. 추가로 백미러, 뒷안장, 잠금장치, 공기 주입기, 비상시에 사용할 간 단한 수리 도구, 짐을 자전거에 고정할 때 사용할 고무 끈을 구매했고, 총 150페소가 들었다. 나에게는 큰돈이지만 이건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만 할 돈이었다. 그리고 이제 자전거가 생겼으니 사실상 떠 나기 위한 준비는 90퍼센트 이상 완료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스페인어-영어 사전을 샀다. 어젯밤 골동품 가게 직원인 폴로의 집에서 아사도(아르헨티나식 바베큐) 파티를 하며 그곳에 모인 친구 들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고, 더 이상 이곳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할 때마다 ‘No Español(스페인어 못해요)’이라고 말 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곧 새로운 여행을 떠나게 되 었을 때 이 스페인어는 나의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 될 것이 자명 해 보였다. 10페소라는, 지금의 나에겐 제법 부담스러운 가격의 이 조그만 중고사전은 내 카고 팬츠의 주머니에 쏙 들어가 휴대하기가 간편했다.
‘앞으로는 널 가까운 친구 삼아야 하겠구나. 날 많이 도와주렴.’
내일은 플로리다 스트리트로 나가 남미 지도와 반바지를 살 생각 이다. 지도는 길을 찾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고, 반바지가 필요한 이 유는 긴 카고 팬츠를 입고 남미의 뜨거운 땡볕 아래서 장시간 자전 거를 타는 것만큼은 지금의 내 처지에서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배낭을 도둑맞은 뒤로 돈은 꼭 필요한 데에만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살았더니 그동안 돈 쓸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담배는 간간히 기회가 있을 때만 피웠고, 식사는 끼니마다 호스텔 안에 비치되어 있던 빵과 잼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가끔 주위의 도움으로 식사 다운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이제는 너무 편안하게 느껴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적응되어 간다는 것이 나의 절박함을 잊어간다는 뜻이 되어 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난 늘 상기하려 한다. 내가 버스터미널에서 짐을 잃어버렸던 그때의 내 느낌을. 내가 그때 보았던 확연했던 내 길을 잊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 길이, 내 마음이, 더 흐려져 버리기 전에 어서 이곳을 떠나야 할 것이다.
11일 차
그리고 나는 또다시 도둑을 맞았다. 내 방 서랍 속에 두었던 돈 꾸러미 중 100페소짜리 지폐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이는 내 새로운 여행을 위해 준비된 경비의 3분의 2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또다시 나의 부주의함이 원인이었다. 나의 좋은 친구들이 머무르는 이 호스텔에 내 돈을 노리는 이가 있을 것 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게 이 일은 무척이나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오늘 골동품 가게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반바지와 슬리퍼, 지도를 사기 위한 돈을 챙기려 했을 때 비로소 난 거기에 있는 돈이 충 분하지 않음을 알아챘다. 누군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러한 상황이 날 힘들게 했다. 도둑질이 좋지 못한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에 불신감이라고 하는 마음의 병을 심어주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새로운 여행을 위해 내 손에 조금씩 돈을 쥐여주었던 고마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미안한 마 음이 들었다. 그들의 소중한 도움을 지키기 위해 난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 전 배낭을 도둑맞았을 때보다도 오히려 마음이 쉽사리 진정 되지 않았다. 난 단지 최소한의 경비로 다시 떠나고 싶었을 뿐인데, 이 상황은 그것마저도 가로막으려 하나 하는 원망감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이 상황 역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것 역시 나에게 무언가 가르침을 주기 위한 길일 거라 확신을 가지려 애를 썼다.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누군가를 의심하지 말라고, 나 자신을 잃고 흔들리지 말라고, 언제나 웃으며 나아갈 수 있는 내가 되라고, 이 상황은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사람은 누구나 선택하느라 고민하는 시간으로 자신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흘려버리곤 한다. 더 슬퍼하거나 고민하지 말자. 모든 게 나를 위해 주어진 길이라고 순순히 믿으며,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 일정에 변함은 없다. 내가 준비가 되었든 안되었든 다음 주 화 요일, 나는 로사리오를 향해 자전거를 타고 새로운 여행을 떠날 것 이다.
12일 차
SOL 호스텔엔 매주 탱고 교실이 열린다. 저녁 시간, 탱고선생 롤란도가 음악을 틀었다. 먼저 한 커플이 가운데로 나와 리듬에 맞춰 춤추기 시작했다. 곧이어 프랑스인 샬럿이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날 손짓해 불렀다. “Shall we dance(함께 춤출까요)?” 그래도 명색이 탱고선생 롤란도의 룸메이트인 나다. 이곳 SOL 호 스텔에서 장기간 머물며 배운 게 있다면 청소, 설거지 외에도 탱고 스텝이 있다. 난 앞으로 나갔다. 쑥스러움이 많은 나지만, 나도 결국은 한 명의 여행자이니까. 그녀와 손을 잡고 간단한 스텝을 밟으며 탱고 리듬을 타다 보니, 오늘만큼은 나도 이 호스텔에 편하게 머무르다 떠나는 한 명의 객이 되었다. 마침내 음악이 끝나고, 나의 스텝이 멈추고 샬럿과 인사하며 자리로 돌아오는데 나와 오랫동안 이 호스텔에서 함께해 온 친구들이 날 향해 환호성을 질러준다. 이 따뜻한 기억. 난 이곳을 떠난 뒤 많이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13일 차
나는 내일 떠난다. 사람에게 있어 준비란 늘 부족하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마음의 준비일 것이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케츠메이시의 ‘타비우도(여행자)’를 들었다. 그리 고 눈을 감고 나의 자유롭고도 즐거운 여행을 상상했다. 마음의 여 유를 되찾기 위한 시간이었다.
많은 이가 말하는 ‘불가능’의 대부분은 ‘불확실함’의 의미이다. 난 이미 한번 내 짐을 모두 잃었고, 그나마 다시 준비한 경비의 반 이 상을 또 잃었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은 나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뜻이 있다면 길이 열릴 것이다. 스스로 돕는다면 하늘이 도울 것이다.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자. 포기하지 말고 웃자.
* 출발 전 준비물 목록 - 리카르도 김 사장님께 받은 자전거, 태극기, 옷가지, 샌들, 모자 - 이탈리아인 친구 다비데에게 받은 헌 배낭 - 플로리다 스트리트에서 구매한 남미 지도, 스페인어-영어 사전 - 현금 약 100페소 - 그리고 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