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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나기
길에서 만나다 전반부를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내가 다리를 건널 방법은 결국 히치하이크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라시오의 말에 따르면, 다리를 건너가는 버스는 내 자전거를 실 어주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다리 위의 톨게이트로 가서 그곳에 멈 춰선 트럭을 상대로 히치하이크를 시도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었 다. 그 말을 듣고 일단 톨게이트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에 빠져 있는데, 그가 일하러 가기 전에 날 거기까지 태워준다고 했다. 어제 봤던 오라시오의 승용차가 작아 내 자전거를 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무튼 그가 도와준다고 하니 기뻤다. 그는 집을 나서면서 내 발에 난 상처에 붙이라며 반창고를 주었고, 비스킷과 로사리오 축구팀의 마크가 그려진 민소매 티, 게다가 자전 거에 물통을 다는 장치를 본인의 자전거에서 떼어내어 주었다. 나라면 언제 또 만날지도 모를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도움을 줄 수가 있을까. 어제 막 만났을 뿐인 여행자에게 자신에게도 필요한 것을 건넬 수 있을까.
그의 차 트렁크를 열어둔 채 자전거를 집어넣고 끈으로 매어 고정 시켰다. 그리고 우린 톨게이트를 향해 차를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이 다리를 건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날 다시 설레게 했다.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사이로 여러 줄기의 햇살이 내리비치고 있었 다. 참으로 아름다웠다. 기분 좋게 그의 차에 앉아 바람을 쐬며 빠 르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차는 톨게이트에 도착해 있었다. 오라시오가 경찰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고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하지만 그는 경찰과 약 10분간을 얘기하더니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차로 돌아왔다. 규정에 따라 이곳에서는 히 치하이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다시 장벽이었다. 하지만 이젠 다소 익숙해지려 하는 '장벽'들. 아직 이 여행은 나에게 자전거여행의 체력적인 고됨보다는, 수많은 상황에 대한 받아들임의 자세를 먼저 요구하고 있었다. 뒤이어 오라시오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오늘 정오면 일이 끝나는 데 일을 마친 뒤에 자신이 직접 빅토리아까지 바래다주면 어떻겠냐고. 정말 고마운 친구다.
우린 다시 집으로 돌아가 차고에 내 자전거를 세워놓았고, 난 그를 따라 차로 몇몇 집을 함께 돌아다녔다.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는 데 그는 목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날에는 안마사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목요일에만 소방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다시 인디펜던시아 공원에 앉아있다. 그는 여 기서 두 블록 떨어진 산안토니오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40분 후에 돌아오겠다며 날 내려주고 갔다. 졸지에 나는 어제 이별했던 이 공 원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어느샌가 익숙해진 이곳의 분수와 사람들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게 되었다. 난 어제 로사리오를 떠났던 것이 아니었나. 이곳은 나와 정말 인 연이 많다.
약속했던 40분이 지났다. 나는 오라시오가 처음 나를 내려줬던 곳으로 돌아가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나타나 주지 않 았다. 10분, 20분, 30분.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휴대용 가방을 제외하고는 내 모든 물건이 그의 차에 들어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가 어제부터 봐온 그는 절대로 내가 의심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가 나를 찾아 다른 곳에서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자리에
서 일어나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며 그를 찾아보았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약속한 시각보다 한 시간이 더 지나가고 있었다. 난 머릿 속으로 그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말자고 되뇌고 있었지만, 사실 언제부턴가 마음속에서 점점 더 커지는 불안과 불신을 쉽게 붙잡지 못하고 있었다. 난 문득 길에 멈춰 서서 조용히 기도했다. ‘제가 남을 믿지 못하고 늘 불안해하며 사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되도록 평온한 마음으로, 더 이상 두리번대지 않고 공원 옆 교차로에 가만히 서서 그를 기다렸다. 그로부터 10분 남짓 지났을까. 경적이 울리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가 저쪽에서 창밖으로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뛰어가 그의 차에 올라탔더니 그가 먼저 사 과부터 했다. 일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졌다고. 이어서 뭔가 문제가 좀 있었다고 설명하는데 자세한 상황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아무튼, 난 혼자서 마음의 투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집에 잠깐 들러 옷을 갈아입고 나왔고, 곧장 나를 데리고 빅 토리아를 향해 출발하였다. 다리를 포함하여 약 59km에 이르는 거 리였다. 이제 정말 다리를 건너 빅토리아로 가는 건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차는 커다란 강과 자그마한 몇 개의 강줄기를 지나쳤고,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평원을 지나 마침내 빅토리아(Victoria)에 이 르렀다. 빅토리아는 자그마하고 예쁜 도시였지만 사람이 왜 이렇게도 눈에 띄지 않는 건지 마치 유령도시처럼 느껴졌다. 아르헨티나가 워낙 크니 이런 소도시엔 사람이 많지 않은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 겠다.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로사리오의 인구도 100 만을 조금 넘기는 정도라고 했으니 말이다. 오라시오는 나를 괄레과이(Gualeguay)라는 도시로 향하는 도로 길목까지 데리고 가주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의 식당으로 날 데리고 가 점심을 사주었다. 난 너무 신세 진 것이 많아 음식이라도 대접하려 했지만 그는 여행자인 내가 무슨 돈이 있냐며 결국 자기가 계산을 다 해버렸다. 고마운 오라시오에게 난 그저 포옹하는 것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고, 우린 웃으며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을 떠나온 이후 자전거보다는 차로 달려 온 시간이 더 길어서인지 아직 나에 겐 자전거의 속도감이 몸에 배지 않은 듯했다. 정말 열심히 달려 50km 정도는 달렸겠거니 하고 생각했을 때, 확인해 본 내 위치는 고작 20km 지점을 겨우 넘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난 달리고 또 달렸다. 최근 며칠간 느껴왔던 약간은 답답 했던 감정을 다 떨쳐내 버리려는 듯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숨이 차왔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어느 오르막길을 넘어 내리막길에 다다 랐을 때 나도 모르게 한 손을 번쩍 치켜든 채 알 수 없는 고함을 지 르기도 했다. 길은 쭉 일직선이었다. 주위를 바라보면 온통 허허벌판에 가끔 소 떼를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여기가 남미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 광활한 벌판은 지평선 저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드문드문 소규 모의 마을을 볼 수도 있었지만, 그마저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지난 휴식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고, 어느덧 해는 빨갛게 익어가며 넘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난 이대로 황량한 벌판 위, 깜깜한 어둠 속에서 온갖 벌레들과 싸워가며 잠을 이룰 수는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마침 저 앞에 보이는 마을로 들어가 잠자리를 부 탁해보기로 했다. 마을 입구에서 말을 나무 기둥에 매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여 어설프게나마 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는 낯선 인물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어찌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고, 섣불리 답을 못한 채 나에게 담배만 연이어 건네었다. 곧 그의 아내와 아이로 보이는 두 명이 다가왔다. 난감해하고 있는 그 남자에게 무슨 상황인지를 물었고, 뒤이어 나에게 다가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난 안타깝게도 그들이 하는 질문을 잘 이해할 수 없었고, 내 상황만을 반복하여 이야기하는 나에게 그 여 인은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곧 고개를 돌리더니, "챠오!"하고 인 사했다. 그리고 처음의 그 남자 역시 잠시 더 고민하는 모습이었지만, 결국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행운을 빈다고 말하고는 그녀를 뒤 따라 발길을 돌렸다. 그 마을의 다른 집에도 찾아가 청을 해보았지만 다시 거절당했다. 나는 이 마을 어딘가에서 그냥 노숙을 할지를 잠시 고민하다가, 다 음 마을이 나올 때까지 좀 더 달려보기로 생각을 바꿨다.
세상은 이미 완전한 어둠 속에 빠져있었다. 가로등은 물론 없었고 길을 밝혀줄 수 있는 빛이란 달빛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가끔 저 어둠 속에서 차량 몇 대가 눈 부신 빛을 발하며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곤 했다. 나는 어둠 속을 한참을 달리다가 다음 마 을이 나오면 그냥 가로등 아래서라도 대충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 다. 이대로 어둠 속을 계속 주행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란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달리던 중에 다시 한번 새로운 마을에 도착했다. 때마침 발견한 가로등 아래 벤치에 자리를 잡으려던 순간, 저쪽 어딘가에서 웬 개 한 마리가 크게 짖으며 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니 그 뒤에서 한 노인이 그 개를 타이르며 걸어 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습관처럼 내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이 가로등 아래의 벤치에서 잠을 자도 괜찮을지를 물어 보았다. 그는 일단 자기 집으로 가서 좀 쉬자고 하며 날 데리고 갔고, 우리는 그의 집 앞 의자에 앉아 잠시 얘기를 더 나누었다. 하늘을 바라보니 별들이 한층 환하게 빛나고 있어 무척이나 아름 다웠다. 그는 나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의심스러운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자기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나에게 선뜻 침대 하나를 내어주었고 샤워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에밀리우라고 하는 이 노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내가 침대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마을 사람 몇몇이 나에게 찾아와 관심을 가지며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여행 중인 한국인을 만나는 게 낯설고 흥미로운 일인 듯했다. 에 밀리우가 그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간 뒤에야 나는 편안하게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23일 차
어젯밤 천둥소리에 잠이 깨었다. 창밖을 보니 거센 비바람과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난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어제 그냥 밖에서 잠을 청했다면 난 지금쯤 밤새 우의를 뒤집어쓰고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에밀리우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다시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비가 오늘 아침까지 계속 이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는데 다행 히 아침에 눈을 떠보니 비는 그쳐있었다. 날씨가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자전거를 타면 금방 또 더워질 것 같아 그냥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1주일도 더 전에 사두었던 식빵과 소시지로 아침을 대충 해결 하고는 아침 7시에 집을 나섰다. 마을 사람 몇몇이 나에게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멈추어야 했다. 점점 심해지는 복통 탓이었다. 아마 어제저녁과 오늘 아침에 먹었던 식빵과 소시지 때문인 듯했다. 특히 빵이 오 래되어서 쉰 듯한 냄새가 났었는데 별문제 있겠냐는 생각에 그냥 먹었던 게 화근이었다. 난 자전거를 수풀 위에 대충 눕혀놓고 곧장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수풀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역시나 설사
였다. 지난번에 대형마트 화장실에서 휴지를 챙겨두길 잘했다는 생 각이 들었다. 다행히 그 뒤로는 배가 그다지 아프지 않아 계속 달렸다. 아직 자 전거의 속도감이 몸에 익지 않은 탓인지 자꾸 조바심이 났지만, 애 써 주행거리는 신경 쓰지 않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달리려 했다.
나는 괄레과이를 지나쳐 괄레과이츄(Gualeguaychu)라는 도시를 향해 달렸다. 역시나 주위 풍경은 광활하고 또 광활한 평원이었다. 사람 사는 집을 찾기란 어제보다 더 힘들어진 듯했다. 가끔가다 사람들을 만나면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담배를 얻어 피웠다. 그건 나에게 담 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임과 동시에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오늘은 1.5리터 물을 세 통이나 마셨다.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목이 끝없이 말랐기 때문이다. 길을 달리다 주유소나 사람 사는 집이 보이면, 잠시 멈추어서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수통을 채 웠다. 가끔 물이 다 떨어졌는데 물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나오지 않 으면 그것만큼 힘든 일도 없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길이 평탄해 주행하기 편하였지만, 그 끝없이 이어진 단조로움이 때때로 날 무료함에 빠뜨리게 했다. 난 약 120km 를 달리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할 즈음 한 허름한 교회 앞에서 멈추었다. 이 교회의 관리자로 보이는 두 남자에게 내가 이곳에서 잠을 자도 괜찮겠냐고 물어보았더니, 이곳 야외 벤치나 교회 입구 쪽 건 물 벽에 붙어 자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난 교회 입구 쪽을 택 했다. 무엇보다 어제처럼 비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4일 차
지금 난 굉장히 피곤하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우선 어젯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하겠 다. 내가 어제 잠자리로 정했던 교회 입구 앞 공간에서 일기를 쓰고 나서 좀 씻을까 하고 수돗가로 가보니 물은 안 나오고 그 대신 뱀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내가 그냥 씻기를 포기하고 잠이나 자자며 아직 어두워지기도 전인 7시에 자리를 깔고 누워있는데(마리아나가 준 우의는 돗자리 대용으로 유용하다), 내 다리 위에 무언가가 툭 하고 올라오길래 자세히 보니 쥐 한 마리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기겁을 하며 쥐를 내쫓은 다음 다시 자리에 눕자 등바닥은 또 왜 이렇게 아픈지. 어제 종일 덥다고 웃통을 벗고 있었던 탓에 등이 새빨갛게 화상을 입었던 것이다. 도저히 제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어 엎드려 누워 보기도 하고, 겨우겨우 등이 안 닿게 옆으로 누워보기도 하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 했다. 그 소리는 마치 오락기 버튼을 누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목탁 두드리는 소리처럼도 들리기도 했는데, 주위에 민가가 없는 데다가 어두운 공간에 혼자였기 때문인지 오싹하게 느껴졌다. 애써 그 소리를 무시하며 서둘러 잠 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화상 입은 등은 갈 수록 더 뜨거워지고 쓰려서 누워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눈을 감고 애써 마음을 안정시키려 하면 이젠 개미들이 내 바지 속으로, 내 티셔츠 속으로, 내 얼굴 위로 올라와서 꿈틀대었다. 그렇게 난 저녁 7시부터 청했던 잠을, 자정이 될 때까지 아직 들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몸 위로 기어 올라오는 개미들에게 어느 순간 짜증이 밀려와 난 그들을 일망타진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잠도 못 잘 바에야 한 판 전쟁이나 벌여보자고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종이 여러 장을 들고 와 라이터로 불을 붙여 개미가 몰려있는 곳을 중심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위협을 가하면 그 개미들이 나에게 다 시는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고, 난 순진하게도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웬걸. 내가 위협을 멈추고 자리에 누우면 이 개미 떼는 아까보다 더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잠들려 하는 내 귀와 콧속으로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난 다시 한번 라이터를 집어 들었고, 그들에 대한 공세를 마치고 다시 드러누웠다가 또다시 더 불어 난 개미 떼 때문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한번 공세를 펼치고, 다시 또 잠을 청하려 애쓰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새벽 4시쯤, 퀭한 눈으로 라이터 불을 켜 주위를 둘러보았 더니 새까맣게 내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개미 떼가 보였다. 그들은
끝도 없이 내 발을 타고 다리로 올라오고 있어 나는 계속해서 다리를 번갈아 가며 비벼야 했다.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 있는 게 힘들 지경이었다. 난 다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을 일분일초라도 빨리 뜨기로. 그들에게 패배를 선언하고 서둘러 짐을 싸기 시 작했다. 모든 옷가지와 가방을 탈탈 털며 개미를 털어내기 위해 애 썼다. 개미들이야말로 진심으로 나와의 전쟁을 선포한 듯했다. 그들이 내 잠을 방해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의 생활 터전에 들어온 침입 자였다. 앞으로 다시는 개미 떼와 싸우고 싶지 않다. 지금도 난 옷 속에서 개미 떼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움찔거리곤 한다.
새벽 4시의 그 깜깜한 어둠 속 도로를 나는 자전거로 달리기 시 작했다. 자전거 안장에 앉은 나는 거의 비몽사몽으로 페달을 밟았고, 간간이 내 옆을 스쳐 지나는 차들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었기 때 문에 다음 도시에 도착하면 꼭 후미 비상등을 사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을 달렸을 때 비로소 불빛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도로 가에 위치한 그 주유소 편의 점에 들어가 초코라떼를 한잔 마시고 엎드려 잠을 청했다. 다행히 그곳의 점원은 나를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덕분에 난 그곳에서 한 시간이 조금 넘도록 편안히 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 엎드려서 잠을
자는 게 이렇게 편안할 수 있다니.
아침 7시쯤 되어 창밖을 보니 주위가 환해져 있었다. 다시 떠나야 할 때였다. 우루과이의 프라이벤토스(Fray Bentos)라는 도시로 가는 길을 주유소 직원에게 물었더니 친절히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내 여행에 관심을 보여 내 지난 일들을 그녀와 나누었다. 그녀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왜 그냥 히치하이크로 어서 빨리 상파 울루로 돌아가지 않는 거냐고 물었다. 난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행을 계속하는 것을 무엇보다 원한다고 답했다. 아무튼 나에게 여 러모로 신경 써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그녀와 작별 인사를 하고 괄 레과이츄를 향해 출발했다. 괄레과이츄까지 20km, 프라이벤토스가 거기서부터 30km. 오늘 중엔 우루과이로 갈 수 있을 듯했다. 우루과이로 들어가면 기분도 한결 좋아지겠지. 거기까지만 가서 푹 쉬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아직 피곤함에 절은 몸으로 힘겹게 그곳에 닿았더니 현재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국경 지대에 있는 이 두 도시가 공장의 매연 문제로 분쟁 중이라서 1년 째 두 도시를 연결하는 다리가 막혀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내가 우루과이로 넘어갈 수 있는 다른 길을 물었더니, 한 남자가 ó
콜론(Col n)을 통해 우루과이로 넘어가는 길을 제안해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가 100km 더 떨어진 지점이라는 것이었다. 몸도 마음도 꽤 지쳐있던 나에게 이것은 아주 우울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난 다시 기분을 추스르고 자전거에 올라 출발하기로 했다. 더 생각하고 고민하는 건 내 마음만 복잡하게 할 뿐 그다지 도움 되는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계획은 가는 데까지 가다가 도중 어디선가 잠을 자는 것이었 다. 하지만 지치고 배고픈 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일단 도시로 들어가서 맥주라도 한잔하며 저녁을 배불리 먹는 것이었다. 남은 식량이라곤 비스킷과 소시지 몇 개뿐인 상황에서 또 하루 노숙을 하는 것은 고생하는 나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든 콜론까지 오늘 중으로 가자. 거기만 가면 먹고 싶은 걸 다 먹을 수 있게 해주마.’ 마치 군 시절의 행군 같았던 오늘의 주행은 내 정신세계마저 그 당시와 비슷한 상태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 먹고 싶은 음식, 또 먹고 싶은 음식. 그리고 내가 왜 지금 이런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은 쌩하고 내 옆을 자꾸만 스쳐 지나갔다.
‘이들에게 100km란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그러다가 문득 길가에 세워진 한 표지판을 보았다. 최고속도 60km/h. 난 혼자 피식 웃었다. 적어도 난 지금 속도위반은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야 콜론에 도착한 나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졸음과 피로, 근육통으로 내 몸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듯했고, 내 자전거는 갈지자를 그리며 힘겹게 힘겹게 마을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일단 나 자신에 대한 보상부터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곧장 슈퍼마 켓을 찾았다. 오늘은 식빵과 치즈 외에도, 다소 사치스럽게 오렌지와 우유까지 샀다. 막상 맥주는 사려고 보니 청승맞다는 생각에 제쳐놓고 일단 허기부터 채우기로 했다. 근처의 공원을 찾아 벤치에 앉아 그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음식은 꿀맛이었다. 오렌지는 입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달콤했고, 평소에 마시던 물을 대신한 오늘의 우유는 맥주만큼이나 특별한 음료로 느 껴졌다. 적당히 배를 채운 나는 그때부터 잠자리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었 다. 오늘만큼은 정말 노숙이 싫었다. 그렇다고 돈 주고 숙소에 묵는
건 너무 부담스러웠고, 이런 도시에서 아무 집에나 재워달라고 부탁 했다간 당장에 면박을 당할 것 같았다.
때마침 성당에서 나는 듯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 소리를 따라 한 성당에 도착했다. 그리고 밖에서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앉아있는 한 여성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잠자리를 제공 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곧 이해한 듯한 표정으로 잠깐 기다려 보라고 했고, 30분쯤 후에 한 남자가 키를 들고 나에게 다가와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그를 따라간 곳은 성당 근처에 있는 다른 건물이었는데, 집안에 옷이 잔뜩 쌓여있었다. 그가 거기 바닥에 매트리스를 하나 깔아주며 여기서 자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그곳엔 샤워실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피자 몇 조각과 콜라를 주며 배고프면 이걸 먹으라고 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