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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국경을 통과하다
길에서 만나다 전반부를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한결 개운했다. 어제 받은 피자로 아침 식 사를 하고 서둘러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어제 나를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자전거에 다시 올라탔다. 그리고 우루과이 국경으로 향하는 도중, 다시 타이어 펑크가 난 것을 알게 되었다. 직접 고쳐보려고 타이어 내부의 튜브를 꺼내어 보았지만 공기 주입구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뜯겨 있었기 때문에 직접 수리는 어려웠다. 결국 마을로 되돌아가 자전거 수리점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왔던 길을 돌아가 마을 안의 한 자전거 가게를 찾았고, 3페소에 자전거를 수리했다.
난 다시 출발해 약 10km를 달렸고, 큰 우루과이강을 다리로 건 너 마침내 국경에 닿을 수 있었다. 예상한대로, 아르헨티나의 출입
국사무소에서 조그마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곳 직원은 내가 새로 발 급받은 여권에 아르헨티나 입국 도장이 없기 때문에 벌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건 이미 대충 들어 알고 있는 얘기였기에 내가 얼 마냐고 물었더니 70페소라고 했다. '50페소라고 들었는데 그새 올랐나?' 아무튼, 이거나 저거나 비싼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래서 난 그 직원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불쌍한 표정 연기를 해가며 내 상황을 조목조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돈을 다 잃어서 지금 무일푼 처지라고, 매일매일 끼니를 연명해나가 기도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이런 나에게 꼭 돈을 받아야 하겠냐고. 그 남자는 처음엔 안 된다, 이건 규정이다, 어쩔 수 없다고 하며 나와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가, 재미있게도 나중엔 가격을 조금씩 내 리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날 한참 지켜보다 여권에 도장을 쾅 찍고는 그냥 통과하라고 손짓한다. 그리고 내 이름을 다시 한번 또박또 박 발음해보고는 ‘씩’ 웃으며 좋은 여행 하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주었다. 아까는 그렇게 무뚝뚝해 보이던 사람이 이제는 그냥 순 수한 시골 아저씨로 보인다. 그렇게 나는 아르헨티나 출국 도장을 무사히 받았고, 뒤이어 우루 과이 30일 입국 도장도 받았다.
난 드디어 우루과이에 들어온 것이다. 사실 아직 내가 가야 할 길에 비하면 내가 온 길은 정말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일단 자전거로 국경 하나를 넘었다는 것에 왠지 가 슴이 벅찼다. 마침 날씨도 좋았고 달리는 길도 어제보다 나은 듯해 신나는 기분으로 우루과이 땅 위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길을 가다 한 자동차 정비소에서 물을 얻고 잠깐 그곳 사람과 이 야기하다 다시 출발. 내가 향하는 융(Young)이라는 도시에서 별로 멀지 않은 어느 주유소에 이르러 점심을 먹기 위해 멈춰 섰다. 어제 사둔 빵과 치즈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는데, 그 주유소에서 일하는 할아버지 직원이 다가와 내 여행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관심을 주었다. 상파울루까지 간다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절 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많은 사람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 부분 내가 상파울루로 가는 길이라고 하면 미쳤다고 하는 반응, 혹은 도대체 왜 그런 여행을 하는 거냐고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이곤 했었다. 아무튼 그가 나를 격려해주고는 떠났고, 나도 자리에서 일 어나 다시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오늘 중으로 융에 도착해서 푹 쉬자 생각하며 길을 막 달리기 시 작했을 때, 길에서 또 한 명의 여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칠레에서 온 에드와르도라는 그는 큰 가방을 자기 옆에 내려놓고 ú
쉬고 있었다. 그는 지금 파이산두(Paysand )라는 도시에서 걸어오는 길 인데 이제는 너무 지쳐서 그냥 히치하이크를 시도하려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꽤 말이 많고 활달한 성격이었고, 내가 다시 출발할 타 이밍을 잡기 힘들 정도로 끝없이 말을 걸어왔다. 결국, 나도 자전거를 잔디 위에 눕혀놓고는 그 옆에 편하게 주저앉아 그와 한참을 얘 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도를 펴놓고 서로의 여행 일정에 관한 얘기를 하기도 했고, 그가 권해주는 빵과 밥을 같이 먹기도 했다. 서로 이런저런 얘 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오후 3시. 벌써 두 시간이 지나버렸 다. 슬슬 융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서 는데, 그가 오늘은 자기 텐트에서 같이 자지 않겠냐고 했다. 어차피 어디서 잘 수 있을지 모른다면 자기가 도와줄 수 있다고, 그러니 같이 융으로 이동하자고. 난 잠시 생각하다 승낙했다. 가끔 동행이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았 다. 같이 이동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히치하이크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까 내가 점심을 먹었던 주유소로 다시 돌아가 들 어오는 차들에 히치하이크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차들이 고개를 흔들고는 우리를 지나쳐갔다. 한 시간가량을 이러다 보니 점점 힘이 빠졌다. 에드와르도에게 농담으로 난 자전거를 타고 갈
테니 넌 뛰어오라고 했는데, 그가 익살스럽게 진짜로 뛰기 시작했을 때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좋은 생각이 있다며 주유소를 조금 벗어난 곳에 모여있는 트 럭 쪽으로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우리 옆을 지나던 한 차량이 멈추어 서더니 우리에게 전단지 하나를 건네었다. 내가 그 전단지를 보고 있는 동안 에드와르도가 그 사람들에게 우리를 태워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 사람들은 고맙게도 융까지는 아니지만 그 길목에 내려다 줄 수 있다고 했다. 마침내 이동 수단이 해결되었다. 차 뒤의 짐칸에 자전거를 싣고 차에 올라탔다. 빠르게 달리는 자 동차 위에서 바람을 맞는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역시 내 자전거랑은 속도가 비교가 안 되는구나! 그들은 우리를 융과 프라이벤토스의 갈림길 앞에 내려다 주었다. 그들은 프라이벤토스 쪽으로 향하는 듯 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에드와르도는 파이산두에서 통기타를 도둑맞았다고 했는데, 그게 무척이나 아쉽게 느껴졌다. 길을 걸으며 에드와르도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니 왠지 그는 훌륭한 연주자였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비틀스'의 ‘Help’, ’Let it be’,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 ’Desperado’ 등을 부르며 길을 걸었다.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걷는다는 것 역시 즐거운 일임을 그가 느끼게 해주었 다. 그는 '핑크 플로이드'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밴드라며 그들의 곡을 몇 곡이나 홀로 흥에 겨워 불러대기도 했다.
우린 융에 도착하여 곧바로 캠핑장을 찾았다. 때마침 발견한 무료 캠핑장이 아주 잘 갖추어져 있었기에 그곳에 짐을 풀고 텐트를 쳤 다. 그리고 근처 슈퍼에서 재료를 사 와 요리를 시작했다. 에드와르 도가 칠레 요리를 직접 선보이겠다고 해서 난 그저 충분한 장작을 구해다 놓고 그 옆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늘도 여지없이 어둠이 찾아왔다. 하지만 오늘은 참 좋은 어둠이었다. 어둡고 조용한 숲속에 우리는 텐트를 하나 치고, 모닥불을 피 우고 있었다. 나무가 파지직 소리를 내며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그 위에 올려져 있는 냄비는 때때로 달그락 소리를 내며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하늘을 바라보면 수많은 별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그와 나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작이 부족 하다 싶으면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수없이 널브러져 있는 나뭇가지 몇 개를 주워와 모닥불 속에 집어넣으면 되었다. 마침내 완성된 그의 요리는 정말 맛있었다. 물론, 우리의 허기가 그 맛을 더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냄비는 금방 바닥을 내보였다. 우리는 두 팔을 등 뒤로 짚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Silence in innocence.” ‘순수 속의 고요함?’ 영어도 잘하지 못 하는 그가 어디서 이런 말 을 들은 걸까? 어느 노래의 가사인 건가? 그가 나를 보며 씩 웃는다. 이 순간이 너무 좋다고. 나 역시 그에 게 웃어 보이며,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말했 다. 내 여정은 예상치 못한 만남이 있어 더 소중하다.
26일 차
텐트에서 맞이한 아침. 밖을 나가보니 숲속의 공기는 아주 상쾌했고, 따뜻한 햇볕이 나뭇 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아침이라니. 아 직 잠들어 있는 에드와르도를 텐트에 남겨두고 주위를 산책했다. 자 전거도, 짐도 없이 하릴없이 걷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다시 텐트로 돌아와 출발 준비를 하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원래 계획은 아침에 서둘러 자전거를 수리하고(어젯밤에 또다시 자 전거 뒷타이어에서 바람이 새고 있었다. 수리한 지 고작 하루 만에!) 곧장 다시 떠나는 것이었는데, 나 홀로 수리하는 도중 타이어가 또 다시 터지며 구멍이 더 커져 버린 것이다. 결국 자전거가게를 찾아 정식으로 수리를 해야 하게 생겼는데, 오 늘은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오늘 출발하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텐트에서 낮잠을 자고, 옆에 있는 에드와르도와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그에게서 야자수 잎 땋는 법을 배우며 시간을 보냈다. 의도치 않았지만 여유롭고 좋은 시간이었다.
아침은 대충 슈퍼에서 산 빵 몇 조각으로 때우고, 점심은 우리 근 처에서 텐트를 치고 있던 이곳 사람들이 나누어준 팥죽 등으로 해 결했다. 오후 느지막이 에드와르도가 슬슬 자기는 버스를 타고 떠나 겠다길래 내가 잘 가라고 작별의 인사를 건넸더니, 그가 자신과 함 께 몬테비데오까지 가자고 했다. 나 혼자 자전거로 그 큰 도시로 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내가 그곳에서 죽임을 당할 거라고 그가 수십 번을 반복해서 얘기하는게 듣기에 별로 달갑지는 않았다. 더이상 듣고 싶지가 않아 그에게 어서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다가, 결국엔 그와 타협을 보았다. 히치 하이크를 해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트리니다드(Trinidad)로 일단 함께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나도 이대로 하루를 멍하니 보낼 바에는 이동하는 것이 좋 았고, 이곳보다는 조금 더 큰 도시인 트리니다드에서 자전거 수리를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시도한 히치하이크는 쉽지 않았다. 길을 걸으며 한 시 간가량을 넘게 손을 흔들었지만 단 한 대도 서주지 않았다. 결국 에 드와르도가 도로 위를 달리던 버스 한 대를 세우고는 이걸 타고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난 버스를 타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그에게 결국 같이 가는 건 힘들겠다고, 미안하다고 얘기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 역시 한숨을 잠깐 내쉬고는 이내 내 손을 잡고 행운을
빌어주었다. 우린 그렇게 작별의 인사를 했고, 그는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자 전거를 끌며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조금 전에 출발한 버스가 얼마 가지 않 아 다시 멈춰 서는 것이다. 그리고 곧 그 버스의 운전기사가 밖으로 나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그쪽으로 향해 갔더니 운전기사가 곧장 내 자전거를 짐칸에 싣고는 나보고 어서 빨리 버스에 타라고 손짓하였고, 나는 엉겁결에 버스에 타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나를 보며 손뼉을 치고 있는 에드와르도를 볼 수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잘 협상해서 버스 요금을 1/3로 깎았어. 50페소(우루과이 1페소는 원화 50원 정도)
만 내면 돼.”
그리고는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다. 자기와 있으면 불가능이란 없 다면서. 버스비로 돈 쓰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에드와르도가 이렇게 자랑스러워하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나도 그냥 웃었다. ‘그래.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인연인가보다’
몇 시간이 지나 우린 트리니다드에 도착했다. 그리고 길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내 자전거를 보고는 다가와서는 우루과이를 자
전거로 여행 중이냐고 물어보며 자신도 우루과이 2,300km를 자전 거로 여행한 적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와 얘기를 하다가 내 자전거 상태를 말했더니 그가 자기한테 안 쓰는 새 타이어가 있 다고 갖다주겠다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차를 타고 사라졌다. 치노라는 이름의 그 남자는 20분쯤 후에 다시 나타났다. 한 손엔 타이어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엔 웬 잡지와 신문을 가지고 왔다. 타 이어를 받아보니 내 자전거에 쓰기엔 너무 컸지만, 그의 성의를 무 시할 수 없어 일단 고맙게 받았다. 잡지를 보니 그곳에 그의 사진과 여행일지가 실려있었다. 우리가 관심 깊게 그 면을 살펴보자 그는 기쁜 듯 웃었다. 그와 길 위에 서서 얘기를 계속하다가, 그가 우리를 근처 캠핑장까지 데려다주겠다길래 고마운 마음으로 그의 차에 올라탔다. 캠핑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호숫가를 끼고 있는 야경이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다. 거기서 치노와 연락처를 교환하고, 그의 휴대전화 카메라로 같이 사진을 찍고는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고 인사하며 그와 헤어졌다. 그는 내일 아침에 여행 지도를 갖다주 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