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27일 차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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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와르도와의 작별

길에서 만나다 전반부를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홀로 텐트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야영했던 이 캠핑장의 공원은 어젯밤과는 또 다르게 상쾌 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조그만 호수와 그 가운데 예쁘게 솟아 오르고 있는 분수, 아침부터 공원 주위를 뛰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밝은 표정. 나도 덩달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체조를 했다. 그리고 호숫가 옆 벤치에 앉아 스페인어 사전을 뒤적이며 내가 한 번쯤 찾아봤던 단어들을 확인해보기도 했다. 스페인어 학습용 책이 있다면 더 좋을 텐데 하고 몇 번이나 생각해 보지만, 그 책을 사는 것조차 지금의 나에겐 부담이라 매번 이 사전으로 만족하고 만다. 아무튼,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아침 8시쯤이 되자, 어제 만났던 치노가 차를 몰고 공원으로 들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차에서 내려 나에게 남미 지도와 우루과이 각 도시의 세부지도를 건네었다. 우리가 사전을 들추어보며 여행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마침 에드와르도도 잠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왔고, 우린 함께 지도를 보며 좀 더 얘기를 나누었다. 마침내 치노가 우리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다시 떠난 뒤, 나는 이 미 지도가 하나 있으니 그 지도는 에드와르도에게 쓰라고 건네주었 다. 도시별 세부지도가 있으면 편리하겠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에드와르도도 지도가 필요한 기색이었고 지금 이대로도 내 여행은 별 불편함이 없었다.

나는 센트로의 한 자전거가게를 찾아 100페소라는 거금을 들여 뒷타이어를 또다시 교체했다. 그리고 에드와르도와의 트러블이 있 었고, 나는 홀로 길을 다시 떠나게 되었다. 그와의 다툼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적어보자면, 서로의 다른 사 고방식이 한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돈 문제가 또 하나의 원인 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는 왜 나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어했던 것일까. 나 역시도 별로 가진 것 없는 마찬가지 신세인데. 내게 어떤 도움을 기대했던 듯한 그는 실망한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나는 떠나기 전 그에게 여행경비로 쓰라며 100페소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었다. 그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껴서가 아니라, 문득 나 자신이 또 얼마 안 되는 가진 것을 지키려 아등바등하고 있다는 느 낌이 들어서였다. 어차피 내가 가진 이 모든 것들도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 후 나는 그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작별을 고했고, 자전 거에 올라타 길을 나섰다. 떠나기 직전 그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나를 붙잡았었지만, 이내 놓아주었다.

한동안 그와의 일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져 난 멍하니 땅만 보며 페달을 밟아야 했다. 그가 나와 함께하고자 했던 이유가 결국 돈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이 이어지며 화가 쉽게 풀리지 않았던 것 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에 대한 나의 행동이 올바랐는가를 생각했 다. 쉬지 않고 페달을 밟다 보니 숨은 점점 가빠졌지만, 다행히 머 릿속은 점점 더 맑아졌다. 문득 잡념을 끝내고 고개를 들었을 때, 주위에 펼쳐진 광활한 대 지가 보였다. 매일매일을 보고 있지만 새삼스레 이 풍경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래. 자기 수행의 과정인 거구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너무 무작정 길을 나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점점 허기가 지기 시작하는데 내 배낭엔 사둔 식량이 전 혀 없었기 때문이다. 오후 3시쯤이 되어서야 도롯가에 있는 한 가게를 발견했다. 가게로 곧장 들어가 빵 한 개와 햄 두 장을 사서, 가게 앞 벤치에 앉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빵을 먹는 동안 옆에 와 앉은 그 가게 주 인아주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이곳에서 사람을 찾아 보기가 무척 힘들다고 하자, 우루과이의 인구가 300만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도시 외곽에는 민가가 많지 않다고 답해주었다. 내가 식 사를 마친 후 그 아주머니의 요청에 따라 이름을 한글로 써주자 굉 장히 기뻐했다. é

그 아주머니와 작별한 뒤, 나는 산호세데마요(San Jos de Mayo)를 향해 다시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오늘은 날씨가 우중충하고 종종 빗방울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하면 일찍 도착하고 싶었다. 하지만 뒷바퀴의 휠이 조금 휘어져 있는 것인지, 주행 중에 브레이크 패드가 반 복적으로 휠에 닿으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에 좀처럼 속력을 내기가 힘들었다. 이 자전거는 수시로 자전거가게에서 수리를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말썽이었다. 다음 도시에 도착하면 자전거가 게에 들러 뒷브레이크를 아예 풀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10km를 더 가야 하는데 주위가 어느덧 깜깜 해져 버렸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워 잠시 길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 느라 시간이 더 지체되어버린 것이다.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 위에 서 달빛만으로 길을 보며 주행을 하다가, 나는 오늘은 여기까지 해 야겠다고 생각했다.

근처에 숙박할 적당한 장소를 찾다가 불이 켜진 한 학교를 발견했 다. 안에서 잠을 잘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기웃거리며 불 켜진 창 문 안을 들여다봤지만, 실내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문도 잠겨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길을 달렸다. 또다시 발견한 어느 불 켜 진 집은 다가가 보니 작은 가게였는데, 거기서는 그냥 사탕 몇 개만 사서 나왔다. 잠자리를 요청할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던 탓이다. 이미 한번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탓인지 자전거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기가 더 힘들게 느껴졌다. 때마침 안개비도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사탕을 먹으면서 산호세데마요까지 좀 더 힘내서 가자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입안에 느껴지는 달콤함은 다행히 체력적인 고됨을 잊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난 꽤나 지친 상태로 마침내 산호세데마요에 도착했다. 거리상으로 따지자면 90km밖에 달리지 않았지만, 오르막길이 끝없이 반복 되었던 탓에 다른 날보다 힘들었던 것 같다. 오르막길이 있을 때는 그만큼 내리막길도 반드시 있는 법이라고, 오늘 나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되새김질하며 오르막길을 달렸는지 모른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센트로에 닿았다. 어디서 잘까 잠시 고민하 다, 지난번 오라시오가 얘기해준 것이 생각나 소방서를 찾았다.

길을 물어 찾아간 소방서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어 왠지 반가웠다. 안으로 곧장 들어가 그곳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많은 것을 묻지 않고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오라시오에게 들었던 말처럼, 다른 여행자들도 종종 이곳에 찾아와서 잠을 자고 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친절하게도 나에게 자신들이 쓰는 침대 중 하나를 쓰도록 허락해 주었고, 바로 옆의 샤워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3일 만에 몸에 비누칠을 하고 샤워를 했다. 그리고 밖에 나가 상 쾌한 바람을 쐬는데 그리 행복할 수 없었다. 오늘 푹 쉬고, 내일은 일찌감치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Montevideo)로 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