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28일 차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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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 도착하다

길에서 만나다 전반부를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길은 정직하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투정을 부려도 적당히 봐주는 일이 없다. 1km, 1km 내가 직접 지나치지 않고 서는 가야 할 곳에 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몬테비데오로 향하는 길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 굉장히 사나운 비 바람이었다. 천둥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흠뻑 젖은 채 한 작은 버 스정류장으로 피신했다. 하늘을 바라보니 사방이 먹구름으로 가득 차 쉽게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몇몇 차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았다. 하지만 단 한 대도 서주지 않았다. 가방에서 비스킷 몇 개를 꺼내어 허기를 달랬다. 그리고 내 짐을 커다란 비닐봉지에 넣고 자전거 뒤에 단단히 묶어 고 정시켰다. 내 마음이 더 약해지기 전에 떠나는 게 좋을 것이다. 어제와 같이 의지하려는 마음을 품기 시작하면 한없이 약해질 뿐이다.

다시 길을 나섰다.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페달을 더욱 힘주어 밟았다. 비에 젖는 것은 곧 적응이 되었다. 처 음에 느꼈던 추위도 내가 힘주어 페달을 밟는 만큼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5시간가량을 그렇게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러다 눈앞에서 구름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햇빛이 새어 나와 비추는 광경이 보였을 때, 나는 비로소 자전거를 잠시 멈추었다.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고 있었 다. 나는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곧이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가 19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악’ 소리를 지르며 열심히 페 달을 밟았던 덕분인지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어느덧 몬테비데오가 가까워져 있었던 것이다. 때론 힘든 상황이 도움이 되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조금 더 달려 마침내 몬테비데오에 도착했다. 오래간만에 찾은 대 도시가 조금은 낯설었다. 잘 차려입은 수트와 깔끔한 옷차림의 사람 들 속에서 비에 젖어 후줄근한 내 차림새가 유난히 튀었다. 센트로에서 두 블록만 벗어나니 바다가 훤히 보였다. 남미에 온 이후 처음으로 보는 바다였다. 수없이 많은 강을 건너왔지만 역시 바다만큼 가슴을 확 트여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벤치에 앉아 조금 전에 산 오렌지를 하나 까먹었다. 갑자기 실감이 났다. ‘난 여행을 하고 있구나. 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전거가 있으 니 자유롭구나.’

저녁 8시가 되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Sol 골동품가게에서 일하던 당시에 잠깐 만나 얘기를 나눴던 프랑스인의 집에 전화를 걸었 다. 그때 그는 가게에 손님으로 왔다가, 내 자전거여행 계획을 듣고는 자기가 몬테비데오에서 일하고 있으니 그리로 오면 연락하라며 명함 하나를 건네었었다. 어제 소방서에서 전화 했을 때 그의 아내가 받았었는데, 오늘 저녁 8시에는 그와 통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었다.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 내 얘기를 그에게 들었다며, “나중에 몬테비데오에서 보아요”라는 인사말도 덧붙였다. ‘그와 연락이 닿으면 그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 그런 기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아내에게까지 내 이야기를 마쳐놓은 듯했다. 그가 나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맛있고 푸짐한 음식을 대접해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행히 오늘은 그가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수화기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무언가로 굉장히 다급해 보였다. 그래서 내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오늘 하루 잠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지 물어보 자 그는 미안하다며 도와줄 수 없다고 냉정히 거절했다. 그럼 언제 한번 만날 수 있을지를 물어보자 그는 요즘에 일이 너무 바빠 여유가 없다고 했다. 나는 이해한다고 말했고, 그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 다. 내 멋대로의 기대감에 빠져 아직 저녁 식사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던 내가 우스워졌다. 몸에서 잠시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나는 가졌던 기대가 컸던 만큼 큰 실망감을 맛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사실 달라진 건 없었다. 단지 내 기대감이 날 이상에 젖게 했고 그게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뿐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제처럼 소방서에서 잠을 잘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로 근 처에 있던 경찰에게 소방서의 위치를 물었다. 꽤 많은 블록을 지나쳐 한 소방서에 도착한 나는, 그 사무실에 앉아있던 한 직원에게 오 늘 날 재워줄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그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어 딘가에 알아보러 다녀오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은 힘들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서 내일모레쯤엔 가능할 듯하다고 말해줬지만, 그때는 내가 이미 이곳을 떠났을지 모르는 시점이었다. 결국 또 다른 곳을 찾아보아야 했다. 주변 건물을 둘러보다 성당 비슷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입구의 여자 안내원은 이곳이 성당이 아니며, 이곳에서 재워주는 것은 힘들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친절한 안내원은 날 위해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어 내 숙박이 가능 할 만한 곳을 알아봐 주었는데, 결국 오늘은 너무 늦은 시각이라 안 될 것 같고 내일 다시 찾아와서 P.Jimmy를 찾으면 그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늘은 노숙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일단 허기를 채우기 위해 슈퍼마켓에 들러 바게트와 치즈, 그리고 오늘 특가로 10페소에 판매 중인 오렌지 2kg을 샀다. 그리고 가게 앞에서 허겁지겁 입안에 집어넣었다. 영락없는 부랑자 행색이었다. 배가 조금 불러오자 다행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노숙은 사실 나에게 그다지 낯선 일이 아니었다. 아까의 그 소방서에 다시 들러서 내 짐이라도 맡길 수 있을지 물었다. 대도시인 만큼 도난의 위험으로부터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중 요한 물건들을 사무실의 캐비닛에 보관하고, 가벼워진 짐만 가지고 근처의 공원으로 와 구석진 곳의 한 벤치에 드러누웠다.

지금 이곳은 그리 불편하지 않고, 무엇보다 어제부터 등의 화상 통증이 사라졌기 때문에 눕기가 한결 낫다. 개미 떼와 다시 마주치는 일이 없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