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43일 차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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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여정이 아니라 그 시각이다

길에서 만나다 전체 본문을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43일 차

숲속의 깊이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또 시시각각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눈을 뜨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역시 어제 천장 있는 곳에 자리 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 루과이만큼은 아니지만 이곳 역시 밤이 되면 제법 쌀쌀했다. 비가 내렸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지난밤에도 난 몇 번이나 추위에 잠을 깨어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윗몸 일으키기를 해야 했다.

새벽 6시 무렵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의 주유소로 이동했다. 하지만 마을 안에 있는 주유소라 그런지 들어오는 차량이 많지 않고 대 부분 근처로 가는 차들뿐이었다. 주유소 직원이 히치하이크를 하려 면 다음 주유소로 가는 게 나을 거라고 조언해 주었다.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다. 제법 먼 거리였다. 게다가 비는 그칠 기 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주유소 직원은 그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 라고 조언해 주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빗속으로 걸음을 옮길 엄두를 내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사실 난 어제의 모래언덕을 지나며 이 여정의 마지막을 생각했다. 이제 상파울루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안락함에 대한 상상이 날 나약하게 만든 걸까.

큰 결심을 하고 8km를 걸어 찾아간 그 주유소에서조차 히치하이 크에 번번이 실패했고, 난 결국 빗속으로 되돌아가 걸음을 더 옮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비는 시야를 가릴 정도로 세차게 내렸고, 한참을 걸었지만 그 비는 쉬이 날 위해 멈추어주지 않았다. 많은 차가 빗물을 나에게 튀기며 빠르게 내 옆을 지나쳤다. 뒤집어쓰고 있던 우의는 내 상의를 간 신히 가릴 정도였고, 그마저도 앞부분은 반 이상이 찢겨 나간 상태라 난 한 손으로 우의 목깃을 붙잡은 채 걸음을 옮겨야 했다.

모자와 바지, 신발은 이미 오래전부터 흠뻑 젖었고, 걷는 내내 신 발 안에서 철퍽거리는 소리가 났다. 걸어온 길이 내내 비에 젖어 있 어서 앉아 쉴 공간조차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이 끊임없이 나약한 소 리를 냈다. 좀 더 영리해지라고. 좀 더 효율적으로 이동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않냐고.

길에서 만나다 여행은 여정이 아니라 그 시각이다 손스케치 그림

하지만 뒤이어 나는 또 다른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고난은 스스로 극복해내라고 그곳에 있는 게 아니라고. 다만 너 자신이 극복할 의지를 가졌는지 시험해보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걸어서 닿을 수 없는 거리이기에 걸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긴 길을 걸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시작했다. 비는 사그라들었지만 아직 그치지 않고 있었다. 배낭 바깥쪽에 자전거용 백미러를 매달았다. 예전 잃어 버린 자전거에서 떨어진 백미러를 따로 챙겨두었는데 마침내 요긴하게 사용하게 된 것이다. 백미러가 뒤에서 오는 차들의 불빛을 반 사해줄 것이다. 이것으로 내가 조금은 더 안전해졌다고 믿으며 어두 워지는 빗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단조롭고 어두컴컴했던 길 끝에, 표지판은 다음 주유소가 1km 남 았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어느 조그만 도시에 다다를 수 있었다. 강을 끼고 있는 야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강을 건너는 다리 위에 멈추어 서서 한동안 넘실대는 강물과 그곳을 따라 이어져 있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비는 어느샌가 그쳐 있었다. 난 주유소로 가서 다시 한번 히치하이크를 시도하려던 생각을 접고 도시 안으로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티쥬카스 (Tijucas) 라는 이 도시의 소방서를 찾았다. 이곳에는 무료 숙 박시설인 ‘Albergue’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미 브라질에서 두 번이나 퇴짜를 맞았던 소방서이지만 달리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어렵지 않게 소방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 앉아있던 한 남자에게 얘기를 했더니 그는 날 사무실에 있는 서장에게로 안내해 주었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오늘 밤 하루 묵을 잠자리를 요청했더니 그 서장은 생각보다 너무 순순하게 날 받 아 주었다.

소방관 한 명이 내 여권을 잠시 확인하더니 체력단련실로 날 데려가 그곳에 매트리스를 깔아주었다. 그리고는 식당으로 데려가 전자 레인지 안에 들어있던 요리 한 접시를 꺼내어 나누어 주었다. 따뜻하게 데워져 있는 맛있는 음식이었다. 맛있게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곧바로 샤워실로 가서 몸을 씻었는데, 노숙을 연이어 삼 일간 한 뒤의 샤워라 그런지 너무나 행복했다. 그곳에선 뜨거운 물이 펑펑 쏟 아져 나왔다.

마치 세상이 날 다시 돕기 시작하는 것이라 느껴졌다. 이건 나에 대한 또 하나의 시험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걸까.

까를로스 에드왈도라는 이곳 소방서의 한 친구는 내 잠자리로 찾 아와서 포르투갈어-영어 사전을 뒤적이며 한참을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돌아갔다. 그 역시 나에게 자기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고 하더니 자기 어깨에 문신을 새기겠다며 웃었는데, 이건 이제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오늘은 굉장히 피곤하다. 험한 빗속에서 35km 정도를 걸은 데다 지난 며칠간 노숙을 하며 피로가 쌓인 탓일 거다. 신발과 양말을 벗은 맨발은 새하얗게 퉁퉁 불어있지만, 물집 잡힌 곳은 없는 듯해 다 행이다.

44일 차

소방서를 나서기 전 또 한 명의 소방관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안드레라는 그 친구는 아침 식사를 하는 내 옆에서 요리를 했는데, 아마 오늘의 식사 당번인 듯했다. 그는 영어를 잘해서 힘들게 사전을 들추며 포르투갈어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내 여 행 얘기를 흥미롭게 듣고는, 나중에 자식들에게 해 줄 좋은 얘깃거 리가 생긴 게 아니냐며 축하해주었다.

많은 소방관의 격려를 받으며 다시 길을 나섰다. 어제 비에 젖어 후줄근했던 내 모습에 인상을 쓰며 지켜보던 덩치 크고 무서워 보 이던 한 소방관 아저씨도 오늘은 활짝 웃음을 지으며 내 여행을 응 원해주었다. 큰 주유소가 그다지 멀지 않다고 하니 그곳에서 다시 히치하이크를 시도해 볼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늘은 아직 흐렸지만 비를 더 뿌려대지 않았고 난 수월하게 주유 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엔 많은 트럭이 대기하고 있었다.

난 곧바로 몇 개의 트럭에 다가가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규정상 히치하이크가 금지되어 있다며 번번이 거절당했다.

또 다른 트럭을 찾아보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처음으로 내가 말을 걸었던 한 트럭 운전기사가 나를 부르는 것이 보였다. 내가 그리로 다가가자 쿠리치바 근처까지는 자신이 태워줄 수 있다고 했 다. 난 쾌재를 부르며 그의 조수석에 올라타고, 그에게 감사를 표했 다.

어제는 그렇게도 힘들던 히치하이크를 오늘은 너무도 쉽게 성공 했다. 이건 아마 어제 내가 그만큼을 걸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스스로 충분한 의지를 보인다면 세상은 날 도울 것 이기 때문이다.

트럭을 타고 쟈드손이라는 그 운전기사와 얘기를 나누며 쿠리치 바로 향했다. 그는 운전 중에도 간간이 마리화나를 피웠는데 이젠 나에게 그다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도로를 달리다 한국의 연과 같은 것이 하늘에 많이 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쟈드손이 여기선 ‘삐빠’라고 부른다고 가르쳐주었다.

꽤 긴 시간을 달려서 트럭이 마침내 산호세도스핀하이스 (Sao Jose dos Pinhais)

라는 쿠리치바 근처의 한 도시에 닿았다. 그곳에 내려 손을 흔 들며 트럭이 떠나는 것을 바라본 후, 난 다시 근처의 주유소로 이동 했다. 언제부턴가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요 며칠간 맑은 날씨를 보기가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유소에서 멈춰서는 차들에게 다시 히치하이크를 시도했다. 이번에도 너무나 쉽게 두 번째로 말을 건 승용차의 운전자에게서 쿠리치바까지 태워주겠다는 승낙을 얻었다.

그의 이름은 리나우도라고 했다. 그는 근처에 조그만 농장을 운영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차 트렁크를 열어 케일, 브로콜리 등을 보여 주며 자신이 재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자신이 사용하는 삼성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그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 그나마 소통이 편했고, 그리 오랜 시 간 지나지 않아 나는 쿠리치바에 닿을 수 있었다. 그와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센트로로 이동했다. 그 근처에서 노숙자 숙소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센트로의 공원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던 경찰에게 노숙자 숙소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그가 다른 몇몇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더니 종이에다 펜으로 약도를 그려 위치를 알려주었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기에 비가 잠잠해지면 그리로 이동할 생각으로 잠시 건물 옆으로 피신해 있는데 아까의 그 경찰이 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노숙자의 숙소를 찾는 여행자인 내가 독특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내 여행에 관심을 보이는 그에게 나는 부에노스아 이레스에서부터의 사건과 여정을 간략하게 그에게 들려주었다.

비가 잠시 그친 듯 하여 그와 악수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중 간중간에 몇 번 더 길을 물어 어렵지 않게 노숙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쿠리치바의 시설은 역시 대도시에 있는 만큼 아주 컸고, 그만 큼 사람도 많고 보안도 철저했다. 입구에서부터 내 복장 검사를 엄 격히 했고, 내 빵 자르는 칼과 라이터 두 개를 퇴실 때까지 압수했 다. 곧이어 통로에 앉아있던 여성은 내 여권을 확인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 신상정보를 아주 상세하게 캐묻고 컴퓨터에 입력했다. 내 대학교 전공과, 심지어 부모님의 성함까지도 말이다.

마침내 그 깐깐한 절차를 통과하고, 내 짐을 모두 라커룸에 보관 한 다음에야 난 그 건물 안에 들어와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었다. 벤치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몇몇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특히, 그중 마리아라고 하는 한 여성은 내 옆에 계속 같이 있어 주었고, 샤워실과 식당까지 나를 안내해주기도 했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어린 24살이라고 했는데, 고생을 많이 했는지 나보다 열 살은 많은 듯 보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두 살 된 아들이 있다며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신은 지금 일자리를 찾으러 파란나주의 주도인 이 쿠리치바까지 와있지만, 아들은 고향에 두고 왔다고 말했다.

그녀와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일찌감치 침대로 발걸 음을 옮겼다. 아직 어제의 피로가 다 가시지 않은 듯 조금 피곤했던 까닭이다. 이곳은 시설이 큰 만큼 침대의 수도 아주 많았고, 난 그 중 하나의 침대를 마음대로 골라잡아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