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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또 하나의 국경을 통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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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일 차
이곳의 이름을 알아냈다.
카스티요스 (Castillos) 라는 로챠와 츄이의 중간지점에 있는 마을이었다. 나는 소방서 사무실에 있는 지도로 대충 지금의 위치를 확인한 후,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 아침도 하늘이 맑게 개어있었다. 상쾌한 기분이었다. 다만 콧물이 며칠 전부터 멈추지 않았는데 아마 이곳의 심한 일교차 때 문인 듯했다.
츄이로 향하는 9번 도로 위에 서서 히치하이크를 시도했다. 오늘은 브라질 땅을 밟고 싶었다. 1시간가량을 도로 위에서 손을 흔든 끝에 한 차량이 내 앞에 서주었다. 츄이 근처까지 간다기에 감사하 다는 말과 함께 곧바로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앉아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쐬었다. 이 우루과이의 풍경도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 다.
츄이에서 4km 떨어진 지점에 도달했을 때 차가 멈추었다. 그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다 시 한번 히치하이크를 시도하여 브라질로 향하는 차를 탈 수 있을 지도 몰랐지만, 난 그냥 걸어서 브라질 국경을 통과하고 싶었다. 다 분히 형식적이지만, 난 브라질-아르헨티나 국경을 버스로 통과하고, 아르헨티나-우루과이 국경을 자전거로 통과하고, 우루과이-브라질 국경은 걸어서 통과하게 되는 것이었다.
쭉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렵지 않게 우루과이의 출입국관 리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은 한산했다. 그다지 많지 않은 관광 객들이 이곳을 통과함을 알 수 있었다. 한 관광객 부부와 잠시 얘기를 나누다 내 차례가 되어 금방 출국 도장을 받았다. 그리고 브라질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문득, 남아있는 우루과이 동전을 다 쓰고 브라질로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전은 환전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길에서 한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내가 서 있는 곳은 이미 브 라질이라고 했다. 우루과이 돈을 쓰려면 다시 온 길을 조금 되돌아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곧 도로 하나가 평화롭게 놓여있을 뿐 인 그 우루과이-브라질 국경에 닿았다. 그 도로를 두고 한쪽에는 우 루과이 가게가 늘어서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브라질 가게가 늘어서 있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그곳에서 슈퍼마켓을 찾아 비누 한 개를 샀다. 빵을 사려고 국경 도로를 따라 좀 더 걸어가다 보니 간판에 ‘JAPONES (일본인) ’라고 적혀 있는 슈퍼마켓이 보였다. 이런 곳에 일본인이 사나 싶어 가게에 들 어갔더니 일본인인 그 가게 주인아저씨가 웃으며 날 반겼다. 같은 동양인이라는 친근감 때문일까. 우리는 긴 시간 얘기를 나눴다. 그는 Chuy에 사는 단 한 명의 일본인이었고(그는 자신이 신문에 났던 기사를 내게 보여주었다), 일 년 전에는 한국인도 한 명 살았었는데 지금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 남은 동전을 털어 맥주 한 캔을 샀다. 로사리오를 떠난 이후 처음으로 맛보는 맥주였다. 내가 너무 맛있다고 하자 일 본인 토베씨는 삿포로 맥주만 못하다고 했다. 그는 홋카이도 출신이었다. 나의 마지막 남은 3페소로 무언가를 살 수 없을지 그에게 묻 자, 그가 5페소짜리 젤리를 할인해 3페소에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난 그에게 감사해하며 작별의 인사를 했다. 가게를 나서 다 시 길을 걷다가 도로 가의 환전소에 들러 남은 지폐를 모두 헤알 (브라 질 화폐)
로 환전했다. 헤알이 많이 비싸진 듯 예상보다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몇 킬로를 더 걸어 브라질의 출입국 관리소에 닿았다. 단 한 명의 관광객도 없는 그곳에서 금세 입국 도장을 받고, 그곳 주위의 트럭 들을 돌며 펠로타스 (Pelotas) 나 포르투알레그레 (Porto Alegre) 로 가는 차들이 있는지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모두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길 위에 서서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예전에 루돌프가 도시 이름을 써 준 종이 푯말을 들고 서 있었지만, 한참이 지나도 멈추어주는 차량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더 걷기로 했다.
하지만 그다지 긴 시간을 걷지 않아도 되었다. 길을 걷다 지나가는 차량에 간간히 손짓을 해보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차 한 대가 서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산타 빅토리아 (Santa Victoria) 라는 마을로 간 다고 했다. 나는 최근 며칠간 그래왔듯이, 어디라도 상관없으니 일 단 가자는 마음으로 얼른 차에 올라탔다.
산타 빅토리아에 도착하여 소방서를 찾기 시작했다. 한 여성에게 길을 물었는데 그녀의 포르투갈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 참을 나에게 설명하던 그녀가 안 되겠는지 날 자신의 친구 집으로 데려갔다. 그녀의 친구 마리오는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는데, 스페 인어가 오히려 그리 반가울 수 없었다. 그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다. 날 데려다준 여성 글라우시아는 옆에서 무엇이 그리도 신기한지 계 속 눈을 반짝이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마리오가 자신의 오토바이로 날 소방서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뒤에 타라고 했다. 난 그 집 가족들이 건네는 시원한 물을 한 잔 얻어 마시고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 집 가족들도 동양에서 온 이방인 인 내가 신기한 모양인지 눈을 뗄 줄 몰랐다.
마리오와 함께 소방서에 찾아가서 잠자리를 청했지만 안타깝게도 도와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그러자 나보다 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마리오와 뒤따라온 글라우시아가 이번엔 날 ‘인데펜덴 시아 (Independencia) ’라고 하는 박물관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다시 한번 도움을 청했다.
한동안 마리오와 글라우시아가 날 대신해 그곳 사람들에게 내 얘 기를 전달했다. 우리의 얘기를 들은 사람이 주위에 모여들었고, 조 금 시간이 지나자 한 명의 여성이 다가와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 다. 그녀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라고 옆에서 마 리오가 말해주었다.
우린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해진 그 자리를 피해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그동안의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 누었다. 그러다 어느새 우리 주위로 구름 떼처럼 다시 몰려든 사람 들을 보고 그녀가 말했다. 지금 난 이곳에서 동물원 원숭이나 다름 없다고. 이 마을 사람들은 동양인을 볼 기회가 정말로 없었던 모양 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감싸고 자기네들끼리 키득대며 얘기를 나누거나, 나와 대화를 하던 여성이 내 이야기를 통역해주면 집중해 들으며 다채로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글라우시아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에게 왜 집에 전화해서 도움을 청하지 않냐고, 왜 이런 식의 여행을 해야 하는 거냐고, 내가 그동안 이미 많이 들 었던 그 질문들을 다시 해왔다. 그럼 난 그들에게 그저 웃으며 아무 문제 없다고, 난 이런 식의 여행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던 와중에 한 명의 여성이 우릴 향해 뛰어오며 날 도와줄 방 법을 찾았다고 했다. ‘Assistente Social(아마도 사회복지센터)’이라는 곳과 연락이 닿아 내 사정을 설명했는데 그곳에서 내 숙박을 해 결해줄 수 있다고 답변이 왔다는 것이다. 난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통역을 해주었던 여성이 내 가 방에 달려있던 장식물(우루과이의 융에서 에두와르도에게 배워 내가 야자수 잎으로 직접 꼬아 만든 것)을 떼어 자기 보수로 가져간다고 했다. 그녀는 그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내가 웃으며 문제없다고, 가져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밖으로 따라 나온 마리오와 글라우시아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짧은 시간 가까운 친구가 되어버린 듯한 그들과의 헤어짐이 아쉽게 느껴졌다.
사회복지센터에서 나온 사람은 나를 한 숙박업소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그 숙박비를 자신들이 대신 지불해주었다. 또한 그들은 내일 펠로타스로 가는 버스표까지 구해주었는데, 이건 전혀 생각지 못한 도움이었다. 이 단체가 내가 아는 일반적인 사회복지센터가 맞는지, 날 도와준 여성이 이곳에 어떤 식으로 내 상황을 설명했는지가 궁 금해졌다.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준 남자가 내일 아침 9시에 버스터미널까지 바래다주러 찾아오겠다고 했다. 난 이제 이 산타 빅토리아라는 마을 자체가 너무도 사랑스럽게 느껴지게 되었다.
숙소는 저예산으로 묵을 수 있는 곳이었다. 10헤알 (당시 1헤알은 원화 약 500원)
이라는 저렴한 가격대에 걸맞게 내 침대 위엔 모래가 흩어져 있 었고, 개미 여러 마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도 두려워 하는 그 개미였다. 그리고 방은 한동안 손님이 드나들지 않았는지퀴퀴한 곰팡내가 났다. 그래도 난 일단 비와 추위와 강도의 위험에 서 벗어날 수 있는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짐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기 위해 문밖으로 나왔다. 입구 앞에는 한 흑인 남성이 앉아있었다. 그 옆에 앉아 그에게 인사했다. 그는 웃으며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담배 한 대를 피우며 그와 대화를 시 도해보았는데, 역시 포르투갈어로 하는 말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난 그나마 그동안 익숙해진 스페인어로 내 의사를 표현하고, 손짓과 표정, 정황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곧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브라질에서 생활해 나가려면 포르투갈어 사전부터 사야겠다는 생각에 주위에 혹시 서점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가 몸을 일으키며 같이 가 주겠다고 했다.
다니엘이라는 이 친구는 해맑은 미소가 매력적이었다. 길을 걸으며 얘기를 나누었는데, 내 여행이야기를 들을 때의 그의 반응은 마 치 순박한 시골 청년 같았다. 우린 서너 군데의 서점을 돌아다닌 끝에 영어-포르투갈어 사전을 발견하여 27헤알에 살 수 있었고, 슈퍼 에도 들러 빵과 햄 몇 장을 샀다. 다니엘은 나에게 이것만으로 저녁 식사가 되느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난 나름 균형있게 식 사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숙소로 돌아오자 다니엘이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 호드리고와 죠고라는 두 명의 친구였다. 모두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졌는데, 난 그들의 포르투갈어를 어떤 식으로든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다니엘이 나에게 오늘 산 빵은 내일 먹고, 오늘 저녁은 이걸 먹으 라며 그들이 레스토랑에서 챙겨온 밥과 감자 으깬 것, 고기, 튀김 등이 든 통을 건넸다. 그리고 같이 마시라며 반 정도 남아있는 콜라 병을 함께 건넸다. 난 감사해하며 그것들을 받고 포크를 들었다.
그들의 방에서 식사하고, 얘기를 나누며 오랜 시간을 보내었다. 호드리고는 내가 써준 한글로 된 자기 이름을 팔에 문신으로 새기 겠다며 그 종이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밤이 늦어 그들과 인사하고 내 방으로 돌아왔는데, 내 침대 위를 개미들이 사정없이 기어 다니는 게 보였다. 지난 번 개미사건 이후 개미 공포증이 생겼는지 그 개미들을 보는 게 힘들었다. 잘못 건드 렸다가는 또 후환이 있을까 두려워 입김으로 후후 불어 개미들을 침대 밖으로 내보낸 뒤, 마침내 침대에 드러누웠다.
오늘 하루는 왠지 길었던 것 같다. 다들 브라질은 너무 위험한 곳 이라고, 심지어 이곳 사람들조차 나에게 늘 조심해야 한다고 수없이 말하지만, 아직 내가 느낀 브라질은 우루과이보다 활기차고 정이 넘 치는 곳이다.
오늘도 나에게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며,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