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36일 차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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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를 위한 무료숙소, Albergue

길에서 만나다 전체 본문을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36일 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7시 40분. 문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일찍 그 사회복지센터의 남자가 와 있었다. 난 급히 짐을 쌌다. 그리고 비닐로 꽁꽁 싸두었음에도 음식 주위에 새까맣게 몰려있는 개미 떼를 발견했다. 일단 비닐 봉지에 대충 한 번 더 쑤셔 넣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와 함 께 승합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날 버스터미널로 데려다주었다. 다시 한번 버스 시간을 확인 해보니 9시 30분 출발이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나를 위해 버스표까지 구해준 그 단체에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고 그와 헤어졌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하고자 아까의 그 음식을 다시 꺼내 어 보았다.

어제 다니엘이 버스 안에서 먹으라고 주었던 튀김 음식은 이미 개 미 떼들에게 완전히 점령되어 있어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 샀던 빵과 햄에도 몇 마리의 개미가 기어 다니고 있었지만 대 충 털어내니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나는 빵과 햄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아침 식사를 하며 버스 출발 시각을 기다렸다.

벤치에 앉아있는데 두 명의 여성이 다가왔다. 날 도와준 사회복지 센터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혹시 한국대사관으로 연락해 주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그들은 포르투알레그레 (Porto Alegre; 남부 히우그란지두술 주의 주도)

에 한국 대사관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난 그냥 지 금 이대로 계속 여행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고, 그들은 날 이해해 주었다. 행운을 빌어주며 악수를 하고 그들은 떠났다. 여러모로 신경 써주는 그들이 고마웠다.

버스로 약 3시간을 달렸다. 버스의 편안한 좌석에 앉아 차창 밖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니 이러한 안락함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펠로타스에 도착한 뒤, 나는 버스에서 내려 ‘Albergue Noturno Pelotense’라는 곳을 찾아갔다. 사회복지센터의 사람이 펠로타스에 도착하면 찾아가라고 했던 곳이다. 몇몇 사람에게 힘겹게 길을 물어 (난 스페인어로 길을 묻고 그들은 포르투갈어로 대답하는 방식으로) 마침내 그곳에 닿을 수 있었다. 오늘 날씨가 매우 더워 걷다 보니 온몸이 금방 땀에 흥건히 젖었다.

그 건물 입구에서 벨을 누르고 조금 기다리자 한 남자가 나왔다. 어떻게 찾아오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가 나에게 저녁 7시에 다시 찾아오면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노숙자로 보이는 또 다른 한 남자가 저녁 7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아마 이곳은 내가 몬테비데오에서 묵으려고 했던 노숙자를 위한 무료 숙박시설과 비슷한 곳인 듯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센트로로 나가 시내를 구경했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이곳이 브라질임을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백인들이 많았던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 비교했을 때 이곳에서는 피부색이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의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도 그 전의 국가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한 성당을 발견해 잠깐 안에 들어가 기도를 드렸고, 목적 없이 길을 방황하다 한 슈퍼마켓의 벽면에 붙어있던 맥주 포스터에 강한 충동을 느껴 브라마 (Brahma,브라질의 대표 맥주) 맥주 한 병을 사고 말았다.

그 슈퍼 입구 앞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맥주를 마 시는데, 목이 말랐던 탓인지 맥주 맛이 그리 상쾌할 수가 없었다. 나의 돈 씀씀이를 보니 이제 브라질에 들어왔다고 마음이 많이 풀어진 모양이다. 사실 거리로 따지면 이제 절반을 왔을 뿐인데.

문득 한동안 집에 연락을 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서 걱정하고 계시겠구나 싶어 시내에 있는 인터넷 카페를 찾았다. 40분에 1헤알. 이메일만 보낸다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아 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이메일을 확인했다.

역시나 어머니와 형으로부터 이메일이 와 있었다. 그들에게 난 여 행 잘하고 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의 답신을 보내고 밖 으로 나왔다.

나는 무엇을 찾고자 하는 걸까. 그러한 상념에 또다시 사로잡혔다. 하늘이 날 지켜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려 애를 썼다. 그렇다면 나의 여정이 어떠한 형태로든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임이 분명했기 때 문이었다.

때때로 체 게바라에 대해 생각을 한다. 나는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내가 느끼는 그는 사상가이기보다 오히려 철 저하게 인간적인 사람이었던 듯하다. 그는 수많은 불행한 사람들 속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보았고, 그들을 위한 사람으로 새롭게 일어섰 다. 사람들은 그가 추구했던 사상보다, 그의 그런 순수했던 열정과 인간적인 면모 자체에 그렇게도 이끌렸던 게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추구했던 세상과는 다른 이 사회구조를 우리가 원하는 것 이라 믿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면서도, 한편으로 여전히 그의 티셔츠를 입고 그의 전기를 읽으며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난이 죄일까. 아니면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제도적 결함이 죄일까.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면, 그건 부 익부 빈익빈을 조장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러한 '경제적 불평등' 을 곧 '행복의 불평등'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분법적 사고를 조 장하기 때문일까.

7시가 되어 아까의 무료숙박시설을 다시 찾았다.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하고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그들은 내 빵 자르는 칼을 가져갔다). 그곳은 이미 많은 노숙자로 붐비고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가 여권을 보여주고, 그들이 건네는 타월을 받고 나서야 샤 워를 할 수 있었다.

이곳은 음식까지 제공해 주었는데 닭고기와 소고기, 팥죽, 파스타, 밥, 야채가 한 접시에 가득 담겨 나왔다. 내가 최근 그 어디서 먹었던 음식보다 영양가 있는 음식이었다. 한 접시를 금세 해치우자 급 식 아주머니가 더 먹으라며 먼젓번보다 음식을 더 가득 접시에 담 아주었다.

두 번째 접시마저 먹어 치우자 나는 배가 너무 불러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식당 앞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는 것이 보였다. 무엇을 하나 싶어 쳐다보고 있으니 교회나 성당에서 온 듯한 두 명의 남성이 그들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서로 대화가 오가는 자유로운 형식이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

모든 절차가 끝난 뒤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몇몇은 일찍 침대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내가 묵을 침대를 안내 받은 뒤 다시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었다. 하지만 사람 들이 낯선 동양인인 나에게 관심을 보여 그들과 얘기를 하느라 정 작 한시도 눈을 딴 데로 돌릴 틈이 없었다.

다들 포르투갈어로만 얘기해서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는데, 조금 뒤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한 할아버지가 오자 대화하기가 그나마 수월해졌다. 한 젊은 청년은 내게 다가와 자신의 성경책을 보여주었 다. 그림이 그려진 읽기 쉬운 성경책이었다. 내가 훑어본 후 그에게 다시 돌려주자 그가 맨 뒷장에 자기 이름과 내 이름을 한글로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이름을 한글로 적어서 돌려주자 굉장히 기쁜 듯 그가 웃으며, 한글로 된 자기 이름을 자기 팔뚝에 문신으로 새기 겠다고 말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자기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는 게 이곳의 유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축구 경기 시간이 되자 몇몇 사람들이 텔 레비전이 있는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식당 의자에 앉아 축구경기를 지켜봤다. 사실 축구경기보다 이곳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현지인들의 축구 열기를 지켜보는 것이 더 흥미로웠다.

37일 차

새벽 6시 반이 되니 방에 불이 켜졌다.

불을 켠 남자가 다들 일어나라고 말하는 듯했다. 어제 축구 경기를 보느라 늦게 잠들었던 탓인지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았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수하고 식당으로 가보니 잼을 바른 빵 두 개와 커피를 배식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아침도 주는구나. 여기서 살면 돈 쓸 일이 없겠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바라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했다. 그냥 여기서 하룻밤을 더 묵고 내일 떠날까 잠시 생각했지만 곧 마 음을 접었다. 단순히 편히 머무를 곳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하루를 더 보낼 수는 없었다. 짐을 싸고 다시 일어났다. 어제 많은 얘기를 나누었던 할아버지가 문 앞까지 배웅을 나와주었다.

“즐겨!”

그래. 떠나는 여정은 즐거워야 한다.

역시나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우의를 뒤집어쓰고 교외로 벗 어나 포르투알레그레로 향하는 국도를 따라 걸었다. 그러다 많은 차가 속도를 늦추는 한 교차로에 서서 히치하이크를 시도했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아무도 멈춰주지 않아 결국 나는 더 걸어야 했다.

10km 정도를 걷다가 소변을 보려고 도로 옆 펜스를 넘어갔다가 거기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한 동물을 발견했다.

쥐일까? 아니, 쥐보다는 조금 큰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동물이 고개를 들었다. 강아지였다.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 았는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는 자그마한 강아지였다. 왜 이 런 곳에 강아지가 있는 걸까? 누가 이곳에 버린 걸까? 아니면 집 없는 개가 이곳에 새끼를 낳고 그냥 가버린 걸까? 측은한 마음이 들 어, 내 빵과 햄 한 조각씩을 꺼내어 주었다. 빵보다 햄을 잘 먹는 모습을 보고는 결국 내가 가진 햄을 죄다 털어주었다.

허겁지겁 햄을 먹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만 몸을 일으켰다. 더 보고 있다가는 정이 들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몸을 돌 리려 하는데 그 강아지가 작게 짖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꼬리를 살 랑살랑 흔들며 그 강아지가 날 계속 응시했지만, 나는 애써 외면한 채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힘내서 살아남아라.’

조금 걷다 보니 집 한 채가 보였다. 아직 그 강아지에 관한 생각이 잊혀지지 않고 있었던 나는 아까의 장소로 다시 돌아가 그 강아 지를 안고 집 앞으로 왔다. 위험한 도로 옆보단 이곳이 나을 거다, 그렇게 얘기하며 그 강아지를 그 집 문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뒤를 힐끗 돌아봤더니 그 강아지가 어느샌가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일부 러 큰소리를 치며 돌아가라고 손짓했더니 그 강아지는 꼬리를 내리고 다시 집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약간 착잡한 마음을 안고 다시 길을 걸었다. 어쩌면 어미 개가 잠깐 어디로 간 것일지도 몰랐다. 그 강아지가 스스로 더 강해질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난 곧 생각하 기를 멈추었다. 어차피 우리 모두가 불확실한 가운데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방향을 인도하는 것은 결국 우 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주유소를 발견해 그곳에 주차된 트럭 운전기사들에게 도움을 청 했다. 그리고 마침내 포르투알레그레는 아니지만 카마쿠아 (Camaqua) 라는 곳까지 태워 주겠다는 한 운전기사를 만났다.

한동안 트럭의 조수석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도중에 크리스탈 (Cristal) 이라는 마을을 지나쳤는데 강을 끼고 있는 풍경이 무 척 아름다운 곳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 그 운전기사가 카마쿠아에 도착했다며 날 내려 주었다. 그리고 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주위 풍경을 느긋이 바라보고,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기도 하며 길을 걷다가, 다시 멈추어 서서 히치하이크를 시도했다. 많은 차가 나를 그냥 지나쳐 갔지만, 마침내 멋진 차 한 대를 붙잡을 수 있었다.

1954년형 캐딜락 플리트우드 (Fleetwood) .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 싼 차 중의 하나였다고 했다. 그 차는 매우 크고, 54년이나 지난 올 드카 임에도 오토매틱 기어와 자동 창문 여닫이, 자동 시트 조절기 능 등을 가지고 있는 완벽히 현대화된 차였다. 슈마허 이전의 유명 했던 한 F-1 드라이버(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5회 챔피언십 우 승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의 메카닉이 소유하던 차라 상태가 굉장히 좋다며, 차의 주인인 디에고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다. 그는 2주일 전에 이 차를 5만 달러에 샀다고 했다. 그는 집에 올드카를 10대나 가지고 있는 굉장한 자동차 마니아였다.

디에고가 영어가 유창했기 때문에 우리는 차 안에서 쉬지 않고 대 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대화는 차 이야기에서부터 오토바이 이야기 (그는 한때 오토바이도 많이 탔다고 하는데, 소유했던 기종은 닌자, 발칸, 인트루더 등이었다고 했다), 자전거 여행 이야기, 한국의 남북 한 문제 등등 다양한 화제를 거쳐 갔다.

창밖으로 허름한 집에 사는 몇몇 인디오들이 보였다. 디에고가 그 들은 현재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아 생활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들은 원래 과라니 (Guarani) 라는 고유언어를 가지고 있는데, 현재는 대부분의 인디오가 그 언어를 잊었고 그 대신 포르투갈어를 쓴다고 했다. 하지만 파라과이에는 아직 과라니를 쓰는 많은 인디오가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그와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차가 포르투알레그레 근처에 다다 랐다. 그가 나에게 여기서 하룻밤을 묵을 건지 아니면 바로 플로리 아노폴리스 (Florianopolis) 로 이동할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그가 그리로 향하는 트럭이 많은 주유소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기에 그럼 그쪽에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54년형 캐딜락이 주유소에 들어서자 모든 주유소 직원들의 시선이 집중됨을 느낄 수 있었다. 차를 멈춘 그는 나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그의 차는 다시 도로 위로 미끄러지듯이 멀어져 갔다.

나는 다시 히치하이크를 시도하였다. 많은 트럭에게 다가가 행선 지를 물었지만 생각처럼 쉽게 플로리아노폴리스로 향하는 트럭을 찾을 수는 없었다. 몇몇 직원이 지금 시간이 너무 늦어 그리로 가는 차가 없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냥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 다시 시도해볼까?’

하지만 난 이미 센트로에서 너무 떨어진 곳에 있었다. 잘 곳을 찾기 위해 이곳에서 다시 헤매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전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난 결국 더 걷기로 했다. 플로리아노폴리스로 향하는 도로 를 따라 걷다가 다음 주유소가 나오면 다시 한번 트럭을 알아보자 는 생각이었다.

고속도로 갓길을 따라 걸었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가 떨어졌고 캄캄한 어둠이 찾아왔다. 저 멀리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불빛이 보였다. 역시 큰 도시가 가까이 있다 보니 지금껏 내가 보아왔던 밤의 풍경과는 아주 달랐다.

갓길은 때론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지기를 반복했는데 가끔 갓길이 좁은 구간에서 커다란 트럭이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갈 때면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리게 되었다.

어둠 속을 홀로 걷다 보니, 내가 군대에서 야간행군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내 등엔 커다란 군장이 메 있고, 난 땅을 바라보며 온 갖 상념에 젖어가며 그저 하염없이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것 이었다.

난 고등학교 때 꿈 많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내 꿈은 얕았고 주체 없이 흔들리는 갈대 같아서 결국 어느 곳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이미 나는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언가 도 전을 통해 내 인생을 크게 뒤바꿀 날이 올 것이라고. 방향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막연한 도전에 대한 열망만큼은 충분했다.

난 내 넘치는 에너지를 받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충분하다고 여 겼던 것일까. 하지만 결국 어느 곳에서도 욕구충족을 하지 못했고, 그래서 뛰쳐나와 버린 것이 아닐까. 나에겐 그동안 꿈의 방향을 고 민하는 일보다, 당장의 열정을 소진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적인 과 제였던 것이 아닐까.

꽤 긴 시간을 그렇게 걷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저 앞에 한 트 럭이 비상 깜빡이를 켜고 도로 갓길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혹시 나를 위해 서 있는 걸까 하고 잠시 기대를 해보았지만, 또 괜히 실 망감만 키울 상상은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그 방향으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내가 그 트럭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한 남자가 트럭 문을 열고 나를 보며 말했다.

“지금 설마 이 고속도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는 거야?”

그의 얼굴이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곧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는 아까 주유소에서 내가 히치하이크를 부탁했던 트럭 기사 중 한 명 이었다. 아깐 그렇게 냉정히 거절하더니, 이 밤중에 고속도로 갓길을 걷고 있는 나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 듯했다. 그는 플로리 아노폴리스는 아니지만, 그 방향의 아라랑구아 (Ararangua) 까지 태워줄 수 있다고 했다. 난 거기까지만이라도 감사하다며 곧장 트럭에 올라 탔다.

트럭에 타고 있던 더글라스와 조제라는 두 명의 남자는 부자지간 이었다. 더글라스는 아직 17살에 불과했는데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 면허증을 딸 나이가 되지도 않았음에도 트럭을 몰고 있었고, 내가 거기에 대해 문제없냐고 물었더니 벌 써 5년 동안 차를 몰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것도 라틴 (Latin) 식 사고 방식인가보다 하며 나도 함께 웃었다.

중간에 잠깐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렀을 때, 조제는 운전하던 더글라스에게도 스스럼없이 맥주를 건네었고, 더글라스가 담배를 꺼내는 것을 보고도 조제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 둘은 또 나에게 자신들의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고 부탁하더니, (역시나) 둘 다 자신의 팔뚝에 문신을 새기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아무튼, 이 둘은 참 사이좋은 부자지간임에 틀림이 없었다.

트럭에서 자꾸 졸음이 와 몇 번이나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다 옆에서 더글라스가 날 흔들어 깨우길래 눈을 떠보니 어느 새 트럭은 아라랑구아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인 사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주위는 캄캄했다.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마을 전체가 안개에 뒤덮여있어 약간 음산한 분위기 마저 연출됐다.

나는 잠잘 곳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한 남자를 발견해 소방서 위 치를 물었더니 그는 나로부터 도망치다시피 하며 쭉 가라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또 다른 남자를 발견해 붙잡고 길을 물으려 했지만, 그 역시 날 피하듯이 쌩하고 지나쳐 가버렸다. 현지인인 이들도 이렇게 인적이 드문 밤거리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래도 다행히 나는 크게 길을 헤매지 않고 소방서를 찾을 수 있었다. 소방서 입구에 들어서서 그곳에 앉아있는 한 남자에게 잠자리를 부탁해보았다.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무어라 말을 했는데, 자세한 건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안 된다는 뜻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내가 수통에 물을 채운 뒤 다른 곳을 찾아 떠나려 했을 때, 그가 조금 더 기다려보라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난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조금 뒤, 그가 웃으며 날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이 마을에 무료로 숙박을 제공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으로 데려다주 겠단다. 나는 감사해하며 그의 차에 올랐다.

도착한 곳은 내가 어제 펠로타스에서 묵었던 곳과 비슷한 곳이었 다. 난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할 수 있었고, 곧 다른 노숙자들이 잠 자고 있는 방으로 안내받았다. 시간은 이미 새벽 1시를 지나고 있 었기 때문에 살금살금 비어있는 한 침대로 가 곧바로 드러누웠다. 그곳의 침대에서는 다른 숙소에서 맡았던 퀴퀴한 냄새가 그다지 나지 않아 기분이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