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담배꽁초의 일기
담배꽁초가 전하는 이야기
내 첫번째 기억은 어떤 아저씨가 슈퍼마켓에서 나를 사가는 장면이예요. 그때까지 난 긴 잠에 빠져있었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잠 말이예요.
그 아저씨의 손에는 나와 함께 어떤 하얀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죠. 나보다 컸어요. 호기심이 많은 내가 먼저 물었어요. "넌 누구니?"
그 하얀상자의 속에 있는 누군가가 대답했어요. "난 우유라고 해. 저 멀리 풀을 뜯고 있는 젖소가 나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해주었지. 난 잠시 이 상자에 머물러 있지만, 다시 이 아저씨의 뱃속으로 들어갈거야. 그리고 이 아저씨는 전보다 더 건강해지겠지."
나는 그 말이 듣기 좋았어요. '젖소의 몸속에서 나와서 다시 이 아저씨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니, 멋진걸. 그건 마치 여행을 하는 기분일거야.'
난 문득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아직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요.
"우유야 넌 내가 누군지 아니?"
우유가 답을 했어요. "난 니가 누군지 알거 같아. 예전에 어떤 아저씨가 너와 똑같은 상자에서 막대기 하나를 꺼내어 불을 붙이는 모습을 본적이 있거든.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며 그 아저씨는 어떤 생각에 잠겨 있었지."
난 내가 천천히 연기로 타오르며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그것도 나름 괜찮은 걸. 난 세상 곳곳을 탐험하는 여행가가 되는거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정말 연기가 되었어요. 우유가 말했던대로 난 불이 붙여지고 연기로 변했죠. 곧장 주위 바람에 몸을 싣고 자유롭게 여행을 떠났던 순간은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세상을 한바퀴 돌고 온 나는 그 자리에 다시 멈추어서고 말았어요. 다시 여행을 떠나자는 바람의 계속된 권유에도 지금껏 이곳에 머물러 있었죠.
왜냐구요? 내가 돌아온 그자리에 미처 다 타지 못하고 버려진 제 반쪽을 발견했거든요. 사람들은 그 반쪽을 담배꽁초라고 불렀어요.
담배꽁초는 주위에도 많이 널려 있었어요. 제 남겨진 반쪽이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반쪽이들도 많이 버려져 있었죠.
전 세상을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많이 보고 왔어요. 그래서 이 장면은 더더욱 충격이었어요. 제가 사랑하는 이 아름다운 자연을 해치는 장본인이 바로 저라니요.
그래서 전 오늘 이 일기를 써요. 너무 고마운 당신에게요. 제 반쪽이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려준 당신 덕분에 전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동안 저 때문에 이 달맞이 언덕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던 바람도 이젠 떠날 수 있다며 기뻐하네요.
고마워요 건욱씨 솔씨. (당신의 이름은 옆에 있던 아저씨 아줌마가 이름부르는 소리를 듣고 알았어요)
잘지내요. 전 다시 여행을 떠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