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그곳사진 59장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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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의 여행, 그곳

한 걸음에 모든 행복이 담겨있다 전체 본문을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아빠의 이야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 예전 남미로 왔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가족과 함께라는 것. 예전 남미를 떠나면서 금방 다시 돌아오리라 생각했었다. 생각보단 많이 걸렸다. 벌써 십 년이 넘게 지났으니. Sol 호스텔의 다니엘은 날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그 호스텔에 다시 돌아가면 예전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를까. 당시의 그 좋았던 친구들 얼굴이 생생하게 생각날까.

산텔모 거리의 골동품가게를 찾아가 볼 예정이다. 리카르도 김 사장님은 아직 그 자리에서 가게를 지키고 계실까. 이번에 다시 만나 인사 나눌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예전의 도움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그리고 지금의 내 가족을 소개할 기회가 주어질까. 많은 상념이 머리를 스치는 걸 보니 난 지금 설레는 것 같다. 지금 몇 개월째 여행을 하는 중이지만, 마치 지금은 다시 여행을 떠나는 것만 같다. 그리고 내가 농담처럼 얘기했던 내 제2의 고향, 내가 다시 태어났다고 믿는 그 남미의 땅에, 지금 내 가족을 데리고 인사하러 가는 것 같다. 그동안 잘 있었냐고. 난 그동안 또 많이 변했다고. 그리고 예전 그때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 남아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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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야기

남미는 우리에게 특별한 장소이다. 친구일 당시에 같은 기간 같은 대륙 (난 중미 온두라스에, 남편은 남미 아르헨티나에)에 있었고, 부활절 기간에 남미 어딘가에서 만나자는 말이 오갔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었다.

우린 그곳에 마침내 함께 왔다.

그때, 남편이 가방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우린 아메리카 대륙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 만났다면, 그때 이루어졌을까?

가끔 궁금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남편은 과거 남미 여행 중 가방을 통째로 도둑맞았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의 무전 여행이 시작되었고, 그 시작에 호스텔 ‘Sol’이 있었다.

지금, 우린 그 호스텔에 도착해 있다.

그 당시 호스텔에 있던 많은 여행자들이 남편의 상황을 듣고 그를 응원하며 진심으로 도왔고, 호스텔 주인인 다니엘은 여행자들의 설득으로 남편이 호스텔에서 일하며 숙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곧 만나기를 희망하는 한인 교민 리카르도 사장님은 길거리에서 일종의 ‘구걸’을 하는 남편을 보고는 당신의 앤틱 전문점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우연히도 그 가게 이름도 호스텔 이름과 같은 ‘Sol’.

스페인어로 ‘태양’이라는 뜻이다.

딸의 이름 ‘솔’에는 (다른 의미도 있지만), 호스텔 이름 ‘Sol’과 리카르도 사장님의 가게 ‘Sol’의 의미도 같이 포함되어 있다.

말로만 듣던 이곳에 같이 있자니 벅차면서도 당시의 상민이가 생각나 마음 한 켠이 찌릿하다.

모든 게 불편하고, 불편하고 또 불편한 숙소이지만, 나는 이곳에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참 설레고 좋다. 이제 남편의 기억 속에 이곳은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한 곳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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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이야기

리카르도 김 사장님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Sol 골동품 가게에서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다만 예전의 멋졌던 장발의 묶음 머리는 이제 없다). 왜 이곳을 못 찾고 어제오늘 그렇게 헤매었던 건지, 지금 와보니 이 주위의 풍경이 명확하다. 근처의 시끌벅적한 작은 광장과 거리. 잊고 있었던 그때의 거리가 다시 기억 속으로 돌아왔다.

사장님은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전거 여행을 떠나던 당시 인터뷰했던 교민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두고 계신다고 하셨고, 심지어 우루과이에서 자전거를 도둑맞았다는 소식도 당시 신문 기사를 통해서 들었다고 하셨다 (우루과이에서 자전거 도둑맞은 이야기가 이곳 신문에 기사화되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오늘 저녁에 신문기사 스크랩을 찾아보겠다고 하시는데, 나도 보지 못한 그때의 기사를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반가움이 앞서 리카르도 김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오기 전까지 싱가포르에서 온 한 고객과 상담 중이셨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다시 말씀을 나누시라고 하고는 내일 가족을 데리고 다시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땐 혼자였지만 11년이 지난 지

금 난 가족과 함께 이곳에 다시 왔다고, 그때 여행을 마치고 나서 꼭 한 번은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는데 지금에서야 돌아왔다고, 함께 담배를 피우며 그런 얘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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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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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가 좀 못 되어서 공항에 들어서는데 인산인해로 북새통이었다. 원래이 공항은 이렇게 복잡한가? 줄지은 기자들도 보였다. 오늘 어디서 유명인이라도 오는 건가?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우리는 아르헨티나 항공 체크인을 위한 줄을 찾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비행 스케줄 모니터를 확인하고는 멍해졌다. 우리 항공편, 우수아이아로 가는 비행기가 캔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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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비행기 캔슬까지. 여행 중엔 예상치 못한 순간이 자주 온다. 주위 사람에게 물어 대충 상황을 파악해 보니 문제는 항공사의 파업. 오늘 갑작스러운 파업으로 줄줄이 항공편 캔슬이 진행되고 있었다. 공항에서 해당 항공사 직원은 찾아볼 수가 없고 콜센터마저 불통이다. 사람들은 모두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일단은 기다려보자는 식으로 다들 공항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파업하는 이유가 뭐지? 아니, 이유는 둘째치고 그럼 우리 비행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혹시 오늘 이대로 비행기를 못 타게 되면 예약을 잡아 둔 우수아이아의 숙소는 어떻게 하지? 오늘 숙소는 다시 알아봐야 하나? 곧이어 메일함을 열어보니 항공편 변경에 대한 안내 메일이 와있었다. 내일모레로 항공편 일정이 변경되었다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어떻게든 상황 파악을 좀 더 해보려고 세계 각국의 아르헨티나 항공 콜센터로 연락을 취해보지만, 여전히 불통.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말을 걸어 물어보니 일단은 기다려보는 게 상책이란다. 본인도 이 파업이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른다고 하니 모두가 답답한 상황이었다. 내 뒤의 브라질 남자는 우루과이로 가는 경유 편에 발이 묶였다. 불과 두 시간 전엔 아무 문제 없이 비행기를 탔는데 지금 자기 짐도 여기 갇혀버렸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일단 우수아이아 숙소에는 상황을 설명하고 숙소 일정을 변경하는 걸로 얘기가 잘 되었고, 그다음 걱정은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냥 일찌감치 받아들이고 다른 숙소를 찾아 떠나야 하나, 일단 상황이 바뀔지 모르니 기다려봐야 하는 건가 고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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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우리 아이들은 이 상황 따위 개의치 않는 듯 즐거워 보였다. 내가 아이들을 화장실에 데려가며 얘기를 나눠보니, 솔이는 자기 똥이 왈라비똥처럼 동그랗게 나왔다며 너무 즐거워하고 있었고 (이건 변비다 솔아..), 건욱이는 비행기 아저씨가 왜 일을 안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했다.

“아빠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줄게” “해봐” “가끔 건욱이가 사탕 달라고 조를 때 있지, 그때 아빠가 밥 잘 먹으면 줄게 하잖아” “그렇지” “근데 가끔 건욱이가 사탕 두 개를 받고 싶어서, 사탕 한 개만 주면 밥 안 먹을 거야, 사탕 두 개 줘, 뭐 이럴 수도 있잖아. (잘 안 그러지만)” “응” “지금 이 비행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런 거야. 사탕 두개 달라고 안 먹고 버티는 거지” “거짓말하는 거야?” “그렇지, 실제로 일을 안 할 마음은 없는데 사탕 두 개 준다고 할 때까지 버티고 있는 거야” “(씨익)” 건욱이는 이해한 듯 보였다.

나중에 저녁 여섯 시쯤이 되어서야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렸고 마침내 파업 협상이 종료되었다는 소식을 뒤에 있던 브라질 남자에게 들을 수가 있었다. 만세!

하지만 그 뒤에도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는데, 인산인해 속에서 어찌어찌 줄을 찾아 섰고,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자리를 잡고 앉은 항공사 직원과 얘기를 할 수 있었다. 가장 빠른 우수아이아 비행편은 내일모레 오전 7시. 보상 요구를 했더니 웹사이트 들어가서 하라고 했다. 더 말씨름 하지 말고 일단 새로운 일정의 보딩패스를 들고 가족을 향해 철수.

오늘 모두 수고했다. 이제 이곳을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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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elisco, Buenos Aires

아빠의 이야기

항공편 캔슬이야기 2: 또 항공편 캔슬?

오늘은 날씨가 문제다. 엊그제 아르헨티나 항공의 파업 문제로 우리 항공편이 캔슬되고, 이틀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더 보낸 뒤 다시 찾은 공항에서 오늘 비행 편마저 캔슬이라니. 우수아이아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만 괜찮다면 이것도 훗날 여행의 추억이 될까. 다시 받은 항공편은 오늘 오후 4시 반. 출발 편이 다른 공항(AEP공항)이라 다시 이동해야 하고 체크인도 다시 해야 하는 녹록지 않은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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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이야기

항공편 캔슬이야기 3: 우린 아직 여기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AEP공항으로 다시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4시 반으로 예정되었던 비행기는 아직 뜨지 못하고 있다. 지독한 악천후는 이어지고 있다. 항공기 결항보다 여기서 더 이슈가 된다는 Boca vs. River의 축구 결승전도 경기 시간을 미루다 결국 내일로 일정을 연기하고 말았다. 이번 항공편마저 캔슬이 되면 세 번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우수아이아를 향하는 비행기가 세 번이나 캔슬 된다면 우린 우수아이아행을 접어야 할까? 일정상으로도 그렇고 뭔가 일이 세 번이나 안 풀린다면 아예 계획을 다시 세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아직은 아이들이 괜찮아 보여 다행이지만, 우리 가족이 너무 고생하고 있는 것 같아 이마저도 다 여행이라고 쉽게 치부하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아까 아내와 택시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런 다이내믹한 사건사고들이 결국 남미 여행을 말하는 것 중 하나 아니겠냐고. 사실 결국 내가 그동안 추억 삼았던 과거 남미 여행의 일부도 (혹은 그 시작도) 하나의 불운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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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이야기

지금은 새벽 4시 40분. 우리는 예정에도 없던 코모도로리바다비아에 와있다. 설마설마했지만 우수아이아로 가기 위한 우리의 세 번째 비행기도 결국 캔슬이 되었고,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같은 날 출발하는 코모도로리바다비아행 비행기를 타고 우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뭐 이래저래 계산적으로 생각하면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항공사 직원의 말마따나 “Anyway you are losing money (어찌 되었든 넌 돈을 잃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번잡한 시내로 돌아가기보다 그냥 변화를 택하였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정을 넘어 마침내 하늘을 날기 시작한 비행기 안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지옥같이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도 천국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명심해라. 천국의 꿈이 지옥을 만든다.’

어두운 새벽 밤을 택시를 타고 달려와 택시 기사의 도움으로 허름한 호텔에 잠자리를 겨우 마련했다. Hotel Azul (호텔 아술). 1,800페소(한화기준 약 2만 원)짜리, 침대가 하나 놓여 있는 작은 방 한 칸. 그래도 공항에서 밤새우고 있기보단 나을 것이다. 내일은 다시 떠나게 될까. 여기는 어떤 곳일까. 내일 날이 밝으면 이곳의 주위 풍경이 어떠할지 궁금하다. 오늘 긴 하루를 보낸 우리 아이들, 아까 공항에선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잘 자라. 이것도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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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calaf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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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야기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파타고니아의 모래 바람을 마주하고 있는데도 기분이 참 좋다.

이 바람이 그 말로만 듣던 파타고니아 바람이구나. 택시를 탈 법도 한 것을 바람을 맞으며 아이들을 이끌고 꾸역꾸역 걸어서 이동한다.

빠름과 느림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빠름을 선택했다면 놓쳤을 많은 것들. 비행기 대신 버스를, 택시 대신 걸으며 이 땅이 얼마나 거대한 곳인지 느끼고, 이곳의 바람과 태양을 더 오래도록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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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to Moreno Glac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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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의 순간을 담기 위한 애타는 노력을

‘사진’ 이라고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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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guna Sucia

아빠의 이야기

엘찰텐(El Chalten) 트레킹

아이들과 함께 트레킹하는 것은 사실 체력적인 싸움이라기보다 인내와의 싸움에 가깝다. 그리고 동무가 없이 혼자 걷는 길 또한 체력적인 싸움이라기보다 자기 마음과의 싸움인 경우가 많다. 저 너머 날씨에 대한 불확실성,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두려움, 본인의 체력적 한계에 대한 의구심, 외로움 등등. 그래서 우리는 이것들이 체력적 도전이라 불리더라도 사실 심적 도전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도전을 외면해왔나. 체력적 한계, 혹은 물질적 한계 등을 핑계로 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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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tz 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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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의 괴물을 만들지 마라 그 괴물은 널 나약하게 만들고,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

말, 말, 말뿐인 세상에 속지 마라 그것은 말에 의존하여 너를 현혹하고 겁주며

그것으로 살아가는 자들의 것이다

눈먼 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라 넌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벗어나서 걸어라 너의 눈으로 보는 것을 믿고 너의 경험으로 판단하라

이른 새벽 산길을 걷다 만난 야생 푸마

난 숨소리를 멈추고 그대로 수풀 뒤에 숨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두려웠지만

야생 푸마를 내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 너무 경이로웠다

어쨌든 살아 돌아왔으니 아름다운 순간이었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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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a del Pliegue Tumbaoo

아빠의 이야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어머니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그래. 오늘이 돌아가신 우리 엄마의 기일이다. 놓치고 있었다. 서둘러 시리얼로 아침을 챙겨 먹으며 한국에 계신 어머니에게 답 문자를 보내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홀로 토레스 델 파이네를 다녀오는 날. 예원이와 건욱, 솔은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남아 따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토레스 델 파이네를 향하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천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 엄마에게 더 이상 이곳의 기억 따윈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이곳 세상에서의 기억과 감정들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따위는) 그곳에 있어서 하나의 짧은 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우리가 마치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러하듯이 그런 것들은 곧 잊히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여전히 어떤 연결고리가 있음을 믿고 싶었다. 엄마가 지금도 날 지켜봐 주고 있고 난 그 시선을 느낄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은 욕심인 걸까.

엄마가 지금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여전히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지 등등이 궁금한 어느 하루. 우리가 기일이라고 표현하는 어느 하루는 단지 이곳에서 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면 엄마는 내 속에서 언제든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생각보다는 일찍 오전 9시경에 도착했다. 입장료 21,000페소를 내고 셔틀버스(3,000페소)를 타고나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에 들어설 수 있었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오늘 세 개의 봉우리를 제대로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걷기 시작했다.

난 아직 아까의 망상에 젖어, 이 순간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곳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면, 그저 이 순간순간의 체험에 집중하는 것으로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이상의 목적이 없었다.

시간은 쉬이 흘렀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걷는 길은 내내 아름다웠다. 가파른 마지막 경사 구간을 지나 마침내 정상에 다다랐을 때 내가 피츠로이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봉우리의 풍경을 이곳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는 볼 수 있어 좋았다. 널찍한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어젯밤 아내가 싸준 샌드위치를 먹었다. 맛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날씨가 흐려지고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시 일어나 하산할 시간이다.

산길을 내려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저 멀리 산 위를 유유히 비행하는 한 마리의 콘도르를 보았다. 우리 엄마는 마침내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을까. 순간 저 새가 마치 우리 엄마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하산을 완료한 시간은 약 오후 5시. 애초 7시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버스는 7시 반, 8시로 미뤄지더니 결국 8시30분에야 우리 모두를 태우고 출발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있을 우리 가족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문득 가족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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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res del Pa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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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이야기

인생은 반전영화와 달라서 마지막이 싱거울 때가 있다. 우리 짧은 남미 여행의 종착지(와 같은 느낌의) 푼타아레나스. 남미대륙의 끝에 위치한 칠레의 작은 도시다. (하지만 생각보다 작지는 않다) 남쪽 끝에 위치한 곳인 만큼 뭔가 남극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작은 마을이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었지만, 생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던 게 사실이다.

이곳에서 하루 차를 빌려 마을을 벗어나 보았다. 더 남쪽 끝으로, 도로가 이어진 남쪽 끝까지 가면 또 다른 느낌이 들 수 있을까 하는 기대였다. 비포장길이 나타난 후에도 Ruta9를 따라 계속 달려갔건만 예상하지 못한 도로 정비 공사로 길이 막혀, 결국 도로의 끝을 수 킬로미터 남겨둔 지점에서 우린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공사지점 앞에 차를 잠깐 세워 두고 아이들과 바닷가로 나가 시간을 보냈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가 어릴 적 학창 시절에 배웠을 법한 그 마젤란 해협, 그리고 그 너머에 보이는 섬들이 티에라 델 푸에고일 것이다. 아이들은 어디서나 놀이감을 잘도 찾았고, 나와 예원이는 그 옆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냈다.

다시 돌아온 푼타아레나스의 도심에서 찾은 전망대는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그곳에는 세계 각국 도시들과의 거리가 적혀 있는 표지판이 놓여있었는데 마침 아래쪽에 평창도 찾을 수 있어 반가웠다.

푼타아레나스에서의 공식적인 마지막 일정은 코코면(신라면집) 방문이었다. ‘무한도전’에서도 나왔던 그 라면집이다. 오랜만에 얼큰한 라면으로 속을 풀 겸, 그리고 우리보다 라면을 더 그리워하는 두 아이의 염원을 풀어줄 겸 그곳을 방문했다. 친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그곳의 사장님, 처음 만났음에도 스스럼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짧은 시간을 보냈을 뿐이지만 라면집을 떠날 때 이별이 아쉬웠다.

이번 푼타아레나스 여행에서 펭귄을 만날 수는 없었다. 투어를 통해 섬으로 나가자니 비용이 부담되었고, 차로 갈 수 있는 세노오트웨이로 차를 몰았지만 길이 막혀 있었다. 들은 얘기로는 과거 마젤란 펭귄이 많이 살았던 세노오트웨이에 현재는 펭귄을 거의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근처에 석탄 광산 채굴을 시작하면서부터 펭귄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푼타아레나스에서 푸에르토몬트로, 그리고 산티아고로 이동한다. 그럼 남미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 짧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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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몬트(Puerto Mont)

앙헬모 수산시장의 바다사자

깨끗하게 살지 못할 바엔 죽어야 하느냐

아니면 시궁창에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느냐

나에게 그런 화두를 던져주었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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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mo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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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 무슨 일이 있든 넌 괜찮을 거야 그런 낙관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릴 때 평안한 하루하루가 이어져 오히려 약간의 긴장이 필요할 때 그 긴장감을 견디기 위해서 필요한 건 나 자신에 대한 낙관 괜찮아 넌 결국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기대감 예상 또는 계획 자칫 나를 이미 그림 그려진 삶의 프레임에 갇히게 하는 생각들 미래에 대한 일종의 속박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괜찮아 일이 결국 어떻게 되든 중요한 건 너다 넌 괜찮을 거야 그런 낙관

자칫 삶의 평가에 대한 굴레에서 허우적댄다고 느껴진다면 이상향적인 삶을 이루기 위한 계획에서

정작 날 놓치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타인과의 비교에서 내 삶의 만족을 구하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벗어나자 그리고 다시 나에 대한 낙관 괜찮아 무슨 일이 있든 넌 괜찮을 거야

그리고 마침내,

삶에 당당해져라

Cancun

엄마의 이야기

늦은 밤 알에서 깨어난 바다거북은 본능적으로 가장 밝은 곳인 밤바다를 향해 걸어간다고, 예전에 건욱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알게 됐다.

더 이상 밤의 바다는 인공적인 빛보다 밝을 수 없게 됐다. 가장 밝은 곳을 따라 바다로 나가야 하는 아기 거북들은 길을 잃고 헤매면서 결국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

칸쿤의 가장 화려한 이곳은 이름부터 Zona Hotelera (Hotel zone). 길고 좁은 해안선을 따라 수많은 호텔들이 늘어서 있고, 밤에는 더 화려한 빛을 낸다.

이전에는 거북이 많이 살았을 이곳 칸쿤의 바닷가에서 이제는 더 이상 바다 거북을 보기가 힘들어진 듯하다.

한때 아이들이 바다거북 코에 빨대가 박힌 동영상을 본 이후, 음료수에 꽂힌 빨대, 다른 사람이 빨대를 사용하는 것만 봐도 "바다거북 코에 빨대 들어가는데 빨대 쓰면 어떡하지?"라면서 빨대 쓰기를 거부하던 때가 있었다.

그 어느 곳보다 화려한 밤을 자랑하는 이곳 칸쿤에서의 마지막 밤. 아이들 재우고 시끌벅적 공연 소리와 환한 불빛 아래에서 흥이 올라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나는 길을 잃고 헤매었을 아기 거북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

한 걸음에 모든 행복이 담겨있다 본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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