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 71
Loma del Pliegue Tumbaoo
한 걸음에 모든 행복이 담겨있다 전체 본문을 무료로 공개한 온라인 독서본입니다.
아빠의 이야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어머니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그래. 오늘이 돌아가신 우리 엄마의 기일이다. 놓치고 있었다. 서둘러 시리얼로 아침을 챙겨 먹으며 한국에 계신 어머니에게 답 문자를 보내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홀로 토레스 델 파이네를 다녀오는 날. 예원이와 건욱, 솔은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남아 따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토레스 델 파이네를 향하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천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 엄마에게 더 이상 이곳의 기억 따윈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이곳 세상에서의 기억과 감정들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따위는) 그곳에 있어서 하나의 짧은 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우리가 마치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러하듯이 그런 것들은 곧 잊히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여전히 어떤 연결고리가 있음을 믿고 싶었다. 엄마가 지금도 날 지켜봐 주고 있고 난 그 시선을 느낄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은 욕심인 걸까.
엄마가 지금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여전히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지 등등이 궁금한 어느 하루. 우리가 기일이라고 표현하는 어느 하루는 단지 이곳에서 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면 엄마는 내 속에서 언제든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생각보다는 일찍 오전 9시경에 도착했다. 입장료 21,000페소를 내고 셔틀버스(3,000페소)를 타고나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에 들어설 수 있었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오늘 세 개의 봉우리를 제대로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걷기 시작했다.
난 아직 아까의 망상에 젖어, 이 순간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곳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면, 그저 이 순간순간의 체험에 집중하는 것으로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이상의 목적이 없었다.
시간은 쉬이 흘렀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걷는 길은 내내 아름다웠다. 가파른 마지막 경사 구간을 지나 마침내 정상에 다다랐을 때 내가 피츠로이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봉우리의 풍경을 이곳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는 볼 수 있어 좋았다. 널찍한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어젯밤 아내가 싸준 샌드위치를 먹었다. 맛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날씨가 흐려지고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시 일어나 하산할 시간이다.
산길을 내려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저 멀리 산 위를 유유히 비행하는 한 마리의 콘도르를 보았다. 우리 엄마는 마침내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을까. 순간 저 새가 마치 우리 엄마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하산을 완료한 시간은 약 오후 5시. 애초 7시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버스는 7시 반, 8시로 미뤄지더니 결국 8시30분에야 우리 모두를 태우고 출발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있을 우리 가족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문득 가족이 그리워진다.

